토론은 서로 다른 의견의 교환이며 이를 토대로한 논박이다.
일련의 논박과 교환과 화쟁을 통한 사유의 충돌인 것이다.
서로 상대의 주장과 논지와 사실에 대한 해석과 개념의 정리를 통해 주장하고자 하는
명제와 이에대한 근거와 논증등의 수사들에 대해 서로 논쟁하는 것이다.
즉, 무조건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해명을 하라고 요구하는것은 적어도 토론이 아니라는 것인데
혹자는 이런건 청문회에서나 하라고도 주장한다.
단지 이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며 대부분 반박조차 불가능 하다.
정당하지 않은 주장이고 사실을 근거로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귀신은 있다라고 주장한다. 아니라면 반박해보라고 말한다. 반박이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토론에서 주장에 대한 입증의 책임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있다.
논리학의 기본마저 지키지 않고 주장하는 사람은 단순한 궤변론자일 뿐이다.
일련의 단어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통념상 합의된 단어와 개념을 주로 사용한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는 단어의 개념이나 의미정도는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개념이나 의미가 서로 상이할 경우 당연히 토론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예외적인 경우 단어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상호 합의에 의해 도출되어야 한다.
어떤 논객들은 이야기한다.
사실을 논박하려면 사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소설과 상상력을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논박하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이다.
기본적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합의와 인식이 전제되지 않는 토론은 성립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명제의 설정은 물론 각자의 사유구조에 따라 다르지만
사유구조의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은 바로 논쟁이 되는 부분이며 일련의 충돌이 바로 토론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토론에서 승패는 쉽게 갈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토론의 승패는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토론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생각을 근거와 논리로 입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타인을 설득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과정이라고도 한다.
확실한건 자신조차 모르는 근거와 논리로 만들어진 주장이나 상상으로 만들어진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