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에서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국정원 김 모 과장과 조력자들에 대해 1심보다 높은 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선고됐고 이대로 확정된다면 공무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허위공문서 작성·행사죄는 유죄, 모해증거위조·사용죄는 무죄
증거 조작한 김 과장 형량은 높였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벌금이나 선고유예
1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던 국정원 김 모 과장(49)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가 대담하게 감행한 것은 유 씨의 밀입국 사실을 증명해 대공수사에서 공을 세우려는 잘못된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법원을 속이고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키며 외교문제까지 비화했지만 반성이 없고, 재판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을 유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바도 없다”고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인철(49) 전 주선양총영사관 영사가 김 과장에 의해 조작된 서류를 근거로 사실확인서(당시 이 전 영사가 유 씨의 출입경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를 작성한 행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실확인서 중 공인부분을 제외하면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지시에 따라 확인한 내용을 적은 ‘진술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모해증거위조죄나 위조증거사용죄(이하 ‘모해증거위조 등’)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증거’에 해당해야하는데 상부에 말로 보고하는대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이 곧바로 증거를 위조한 행위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김 과장의 범죄에 공모하거나 관여한 혐의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의 형량은 낮아졌다. 이 모 전 국정원 처장(55)은 1심에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벌금 1천만원형을 선고받았다. 직책상 김 과장의 업무를 지휘, 감독할 지위에 있음에도 벌금형에 그친 것이다. 1심에서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권 모 과장(51)과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이 전 영사는 각각 벌금700만원의 선고유예에 그쳤다. 선고유예를 받고 2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받은 사실이 없던 것으로 된다.
재판부는 “김 과장의 말을 믿고 추가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국정원 대공수사의 관행이므로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해달라”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대공수사의 관행은 결과적으로 재외공관의 문서의 신용에 나쁜 영향을 줘서 반드시 시정돼야할 것으로 피고인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 외에 수단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벌금형의 선고로 대법원에서 이대로 확정된다면 이들은 국가공무원의 직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이 종료됐거나 집행하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이는 당연퇴직의 사유가 된다.
유우성 씨의 변호를 맡았던 김용민 변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벌금형에 선고유예를 하면서 공무원직을 유지하게 됐다”면서 “실제 실행자로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김 과장과 피해자가 선처를 바란다고 했던 조력자 김 씨의 형은 높이고 다른 국정원 직원들은 벌금형으로 낮추면서 봐주기 식의 판결을 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적용 안하고, 법원은 봐주기 판결?
조력자로 알려진 김 모(62) 씨와 조선족 진 모(61) 씨에 대해서는 1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지만 각각 1심의 징역1년2월과 징역8월보다 높은 징역2년과 징역1년6월을 선고했다. 김 모 씨의 경우 그동안 잘못을 모두 인정해왔고 수사절차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점을 재판부도 인정했다.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 씨 역시 김 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씨에게는 1심보다 높은 형이 선고됐다.
피고인들은 2013년 8월 유 씨가 간첩이라며 국가위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 1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자 2심에서 유 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싼허 변방검사참 명의), 유 씨의 출입경 기록 등의 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초 기소됐다. 당시 검찰이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무고‧날조)죄가 아닌 형법상 모해증거위조 등의 죄로 기소한 것이 논란이 됐다. 국가보안법 위반죄와 모해증거위조 등의 죄는 형량이 같은데 국가보안법이 형법에 대해 특별법이므로 범죄혐의와 형량이 같다면 국가보안법위반죄가 적용돼야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형법상 모해증거위조 등의 죄로 기소했고, 결과적으로 이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된 셈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이 애초에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모해증거위조 등으로 기소한 것이 문제였다”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보면 이 전 처장의 경우 업무지시자로서 처벌받을 수 있음에도 증거냐 아니냐의 판단으로 무죄가 돼 공무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벌금형에 그쳤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