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상황이 나쁘면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택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란 현실을 살펴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하는 것이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내 생각이다."
-<김대중 자서전>에서
선거 때 불거지는 최선과 차선, 최악과 차악이라는 말은
원래 1987년 이후 김대중 정부의 성립에 이르는 시기까지
민주당 지지론과 독자적 진보 정당론 간의 대립에서 나왔습니다.
운동권에서 민주당 지지론을 폈던 사람들은 정치는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지요.
여기서 최악은 독재 정권을 이어받은 민자당-신한국당 세력을 얘기하는 거지요.
수구 보수 세력의 재집권이라는 최악을 피하려면 김대중과 민주당이라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논의는 운동권 출신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셈이지요.
지금 민주당의 중추를 이루는 이해찬 대표와 김근태, 우원식, 유은혜 장관, 나중에는 전대협 계열의 이인영, 우상호 등은 이 논리에 따라 순차적으로 민주당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민청련과 전대협에서 <비판적 지지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고
이해찬 대표는 물론 유시민 작가, 정봉주도 민청련 멤버였던 만큼 이런 논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운동권 시절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론을 취하고 온건한 좌파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민주당에 들어온 뒤에는 여전히 진보적이기는 하지만
이념상 왼쪽에서 중도 쪽으로 방향 전환이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지금은 유시민 작가가 말씀하시는 소셜 리버럴,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반면에 독자적 진보 정당론자들은 진보 정당이라는 최선을 선택해야 사회 진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깃발을 들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본 거지요.
지금의 정의당애 속한 노회찬과 심상정 등은 이런 논리에 따랐습니다.
이런 논쟁 과정에서 운동권은 좌파 이념과 독자적 진보 정당을 최선으로 간주하고,
자유주의 개혁 세력인 김대중과 민주당을 차악, 수구 보수 세력을 최악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고,
나쁜 상황에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하여 차악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지요.
그리고 이런 논리에 따라 재야 인사와 운동권 출신들을 영입했습니다.
이 논리에서 민주당은 차선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 정당의 이상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현실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개혁 노선이 옳다고 여기신 것으로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