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354
인터뷰이: 박경석 장군(88·예비역 육군 준장)
625 및 월남전 참전
불후의 명장 채명신(월남파병 사령관) 저자
Q. 백선엽이 저지른 친일행위보다 6·25전쟁의 공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낙동강 전선이 240㎞였다. 그 전선에서 한국군 5개 사단과 미군 3개 사단, 즉 8개 사단이
합심해서 방어해낸 것이다. 백선엽은 그중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Q. 낙동강 방어에서 미군도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군 B29 폭격기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한·미 연합군 8개 사단을 지휘하면서 불퇴전의
결의로 앞장섰던 미군 워커 장군의 공도 컸다. 훗날 일각에서 백선엽이 낙동강 전선을
혼자 사수한 것처럼 과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Q. 누가 과장했나?
6·25전쟁 공로를 과장해 스스로 영웅화한 주역은 백선엽 자신이었다.
Q. 6·25전쟁의 진짜 영웅이 있다면?
당시 전쟁기를 통틀어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장군 정도를 꼽을 수 있다.
* 김홍일 장군
한강 방어선 지연전투 7일, 금강-소백방어선 지연전투 5일 등(국가보훈처, https://www.gov.kr/portal/ntnadmNews/354264)
이승만이 인정한 오성장군(국방일보, http://kookbang.dema.mil.kr/newsWeb/20081117/1/BBSMSTR_000000010223/view.do)
* 김종오 장군
춘천-홍천 방아선 지연전투 5일
백마고지 전투 승리(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0502)
Q. 묻힌 이야기는?
6·25 개전 초기 국군이 무너져 내렸다. 개성의 1사단장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사단장이 없는 동안
닥친 전쟁에서 1사단은 속수무책 후퇴했다. 임진강 남쪽의 일부 병사들이 고향 집으로
달아나버릴 정도로 부대는 엉망진창이 됐다.
Q.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논란을 어떻게 보나?
비록 현행법상으로 백선엽이 현충원에 묻힐 자격을 가졌다 하더라도 내가 후손이라면
극구 만류하겠다. 그가 만일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역사의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묻힐 곳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백선엽 장군에게는 현충원 대신 인천에서
선인학원으로 ‘형제애’를 나눈 동생 백인엽씨가 묻혀 있는 가족묘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요약
백선엽 대령은 전날 서울 육군회관 파티에 외출 나갔다가 6·25가 터진 그날 오전까지
부대에 나타나지 않았다.........
6.25전쟁 제1호 빤쓰런 .......ㅋㅋㅋ
반민족 행위자 처형에서 살아나..빤쓰런 총살에서 살아나.....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