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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은 라면을 좋아한다. 세계 최대 라면 소비국은 중국이지만 1인당 라면 소비량으로 따지면 한국이 최고다. 한 사람이 1년에 68개를 먹는다고 하니까 적어도 1주일에 한두 번은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이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것이 1963년이니까 벌써 50년이 됐다.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개발된 해로 따지면 55년이다. 라면, 이 위대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반백 년 라면의 역사는 시련에서 출발한다. 그 탄생사는 전쟁의 고통, 그 혼란에 내동댕이쳐진 개인의 눈물, 그리고 힘든 세월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라면의 역사는 고난 극복의 궤적이며 인간 승리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땀과 눈물이 모두 스며 있다.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안도 모모후쿠라는 사람이 처음 개발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 일본 국민들 대다수는 미군이 제공하는 밀가루로 연명했다. 뒤집어 보면 국수 장사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 직장을 잃은 안도는 장기간 보관해도 원래의 맛을 살릴 수 있는 국수를 대량 생산해 사업화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업이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았다. 거의 10년 동안 국수 개발에 매달린 안도는 마침내 가진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가정은 파탄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나이도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안도는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잔하자며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보던 안도는 포장마차 주인이 어묵에 밀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젖은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밀가루 반죽에 포함된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면서 밀가루에 숱한 구멍을 남긴다. 이 구멍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면 국수가 다시 부드러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안도는 연구에 매달린 끝에 1958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간편하게 먹는 즉석 라면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라면 생산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안도가 라면 제조 방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도 쉽게 라면을 만들 수 있었다.
한국에서 라면을 처음 생산한 것은 1963년이다. 경쟁이 치열한 일본 라면업계에서 한국에 라면 제조 기술을 이전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최고지만 라면이 처음 국내에 선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밀가루 음식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느끼한 국물에 값도 싼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라면은 가격이 10원으로, 당시 식당에서 사 먹는 백반이 30원이었으니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라면이 널리 보급된 것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 덕분이다. 쌀을 아끼려고 라면 보급을 장려한 것인데 대통령까지 관심을 보였다. 대통령이 우리 국민은 맵고 짠 것을 좋아하니 느끼한 국물 대신 고춧가루를 이용한 수프를 개발해보라고 제안하면서 개발 자금까지 지원했을 정도다.
일본 라면이 패전의 허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발달했다면, 한국 라면은 산업화 도중 식량 자급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라면이라고 하면 인스턴트 라면부터 떠올리지만 라면은 사실 생라면을 기름에 튀기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생라면은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일반적으로 생라면의 뿌리는 중국으로 보고 있다. 1870년대, 요코하마의 부두에서 일하던 화교 노동자들이 먹었던 국수를 원조로 본다. 이들이 고향에서 먹던 ‘라몐(拉麵)’이 일본의 생 ‘라멘(らめん)’의 뿌리라고 하는데, 라몐이란 쉽게 말해서 수타국수다.
수타국수가 밀가루 반죽을 바닥에 때리며 늘리는 것과 달리 라몐은 공중에서 그대로 잡아 늘리는 것이 다르고 수타국수보다 면발이 훨씬 가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는 수타국수를 주로 짜장면으로 비벼 먹지만 중국은 라몐을 쇠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때문에 겉보기에도 일본의 생라면과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생라면을 예전에는 지나(支那)소바, 또는 주카(中華)소바라고 불렀다. 생라면에는 이렇게 격변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요코하마에 와서 돈을 벌어야 했던 중국 쿠리(부두 노동자)의 눈물이 배어 있다.
김정은이 선택한거지
재앙이가 잘해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끈데 아닌데도
대깨문은 그걸 문재앙 업적으로 포장하더라고
사드배치와 김죄동의 이중적태도 비판, 수많은 한미군사훈련들
전부 김정은 태도변화전에 문재앙이가 했던것들인데
다 잊어쳐먹고 북한의 태도변화를 위해 재앙이가 큰일을 했던것처럼 말하더라고
군사훈련은 오히려 더 빡세게 했었지 ㅋㅋ
전형적인 협상가는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들을 일괄적으로 묶어 상대방을 압박한다. 우리처럼 단일 사안을 가지고 협상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협상가인 트럼프는 미·중 정상회담 시 안보, 경제·통상을 섞어 북한 선제공격 자제, 중국의 대규모 무역흑자 묵인, 환율조작국 미지정,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유보라는 조건으로 원유 제공 중단을 포함한 대북 압박 조치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받아냈다.
트럼프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방미 시 중국이 추진하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병행 전략은 안 된다고 설득했으니 백악관 관료들의 얼굴 표정이 어땠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우리 의도를 눈치챈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한국을 제외한 북·미·중 3자회담을 제안하자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한 틸러슨 국무장관의 반응도 석연치 않다.
반면 트럼프 사위보다 겨우 두 살 어린 김정은은 태양절 군사행진에서 ICBM 추정 미사일과 무기를 선보이며 북한의 무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면서도 ICBM 시험발사를 유보해 미국에 선제공격 명분을 제공하지 않았다. 나아가 단거리 미사일 시험 강행으로 사드 배치 명분을 강화시킴으로써 미·중 관계는 갈등 구조로 가고 한·중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해 중국의 북한 지지 강화와 미국의 대북 직접 협상을 유도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가 김정은을 영리한 녀석이라며 그와의 만남에 흥미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는 무기력한 한국에 사드 비용 1조원과 ‘끔찍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재협상을 요구했고 한국이 역사적으로 중국 영토였다고 발언했다. 트럼프와 미국 국가안보팀은 북핵 문제 해결도 하지 못하고 전작권 행사도 미루는 한국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자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조선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현 통상교섭본부장 한미fta를 주도한 김현종 본부장의 17년5월 칼럼인데
이 사람이 진짜 매의눈으로 외교적현안을 확실히 봤음. 북한은 대화하고 싶다는 제스쳐를 이미 오래전부터 보내고 있었고 문재인대통령이 당연히 그걸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