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시대를 이끌었던 3김은 오늘날 정치인과 세 가지 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첫째, 그들은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이 있었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는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정치를 ‘업’으로 했다. 목포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1997년 대권 도전 네 번 만에 70이 넘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런 불굴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권력의지)’의 힘으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라 정치를 ‘즐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김영삼도 그런 정치인이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동지를 모으고, 당을 만들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된다. 혼술, 혼밥 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정치를 머리로 하고, 혼자 한다.
셋째, 그들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었다. 요즘도 권력에 맞서는 정치인은 꽤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해도 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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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6010600085&code=910100#csidx954d15d9546c058845d034061adad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