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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부산 국제신문 기자였던) 나는 1980년 5월23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에서 그 流血(유혈)사태를 취재했고, 그 뒤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 경상도 출신인 기자는 광주에서 취재를 하는 데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지역감정이 광주사태의 중요한 원인은 아니란 느낌이 왔다. 계엄당국이 당초 광주사태의 본질을 지역감정 쪽으로 돌린 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광주시민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은 공수부대원들의 과격한 진압에 대한 거의 동물적인 분노 때문이었다. 신군부에 의한 金大中씨의 연행도 한 촉발요인이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金大中 석방』을 요구하는 구호는 다른 구호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리가 낮았다(그 뒤 검찰조사에서도 金大中씨가 광주사태를 조종했다는 說은 부정되었다).
『全斗煥 타도!』란 구호 뒤에는 『金日成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따랐다. 시민들이 간첩으로 의심가는 시위자를 붙들어 계엄당국에 넘겨 주기도 했다. 무장 시위대의 교도소 습격사건, 무기고 탈취, 기관총 사격, 장갑차와 차량 돌진 등으로 계엄군을 몰아낸 뒤 광주를 장악한 이른바 「시민군」 지휘부는 軍紀(군기)를 비교적 엄정히 잡아 약탈 등의 피해는 최소화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