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라는 단어를 풀이해석하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길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뜻에서도 애매한 부분은 존재한다.
이를테면 과연 치우치지 않는 그 상태를 바른 상태라고 볼 수 있는가.
또는 어떠한 기준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중도라는 말은 불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인간 본연의 성찰과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는데 쓰인다.
아주 간단하게 해석하자면 극단을 거부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건 극단을 부정할때 쓰이는 중도라는 개념조차 중도일 수 없다.
극단의 사상에 대하여 논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주장이되고 이 주장을 다른 사상이나
타자가 또 다시 비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중도는 극단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지만 언제든지 이를 버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뿐,
중도 그 자체가 어떠한 사상이나 주장이 될 수 없다.
또한 중도를 거론하며 중용(中庸)을 배제할 수 없다.
중용은 과거 大學, 論語, 孟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궁리를 한 책이다.
중용에서 나온 유명한 글귀를 인용하여 보면
舜其大知也與!舜好問以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풀이하여 보면 舜임금이 큰 지혜인 이유는 자신의 지식에 기대지 아니하고
타인의 지혜를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묻고 살피고 의견을 듣고 그 중에서 가장 좋고 적당한 것을 택하며 집단의 지혜를
자유롭게 사용하니 큰 지혜가 되는 것이다.
양 극단의 의견이나 주장을 묻고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며 중간을 택하였다.
이는 임금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은 주권을 가지며 행사 할 수 있다.
이는 과거의 백성처럼 지배를 받는 개념과는 분명히 다르다.
필자는 간혹 중도라는 말을 어떠한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하는데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피력하면서 중도라는 말을 사용하며 면제부를 받으려고 한다.
나는 중도니까 비판을 받고싶지 않다는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중도란 그런 사상이나 개념이 아니다.
어떠한 사상을 대변하거나 그 또한 극단으로 갈 소지가 있거나 버릴 수 없다면
이는 중도가 아니라 중도를 거론한 또 다른 사상일 뿐이다.
타자의 말을 듣고 타자와 생각을 공유하고 이를 즐겨하며,
극단으로 치우쳐짐에 대한 경계를 하는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해야 할 물음이다.
이는 옳음이나 정의를 찾아가자는 목적이 결코 아니다.
어떠한 완벽한 진리나 사상을 구성하려는 단계도 아니다.
중도를 자신의 입맛에만 맞도록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한다면
이는 이미 중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