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출처 조선닷컴 토론마당의 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 죽은 사람들 명단
박정희 대통령 통치시절에 죽은 사람이 수 천명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고 한번 일일이 세어 봤습니다.
무장공비로 교전 중 사살된 자, 김대두 같은 살인범에 의해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반정부 운동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입니다.
조사가 미흡해서 추가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되며,
추후 안티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많은 추가자료 준비를 부탁 드립니다.
사형언도를 받고 죽은 사람 외에 구속,석방 후 죽었다는 사람들은 찾기가 쉽지 않군요.
사형혐의가 확실한 사유로 재판을 받고 죽은 사람이더라도 일단 올렸습니다.
5.16 혁명재판 결과 7명 - (60년 선고에서 3년~5년 형을 언도 받지만,
당시 4.19 희생 유가족 및 사회단체의 처벌 강화 주장 및 시위로 사형에 처하게 되죠)
최인규 ; 자유당 내무장관. 3.15부정선거 지휘. 시위대에 폭력진압 지시
곽영주 ; 4.19 의거 시 발포 명령. 거액의 고리대금업과 세금포탈, 정치깡패 비호
임화수 ;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많은 사상자를 유발
이정재 ; 40인명부 작성 암살 지시, 사사오입 지휘 등 정치깡패 활동
신정식 ; 서대문조직. 동양극장 앞에서 학생들 살해
조용수 ; 북한 자금으로 사회주의 민족일보 창간 운영
최백근 ; 통민청(남로당, 빨치산 인맥으로 구성)과 사회당을 창당후 조직 활동
그후 간첩협의로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 29명
학보병사건(63) - 최영오
경향신문 간첩사건(65) - 송택봉, 유익재
동백림사건(67) - 조영수, 정규명
통일혁명당사건(68) ; 김종태, 최영도, 김질락, 이문규, 윤상수, 정태욱, 정태상,
박종영, 한영식, 유낙진
간첩사건(70. 7월) - 김규남, 박노수
인혁당재건위사건(74) -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상진,
우홍선
부산대 간첩사건(75) ; 백옥광(재일동포)
서울의대 간첩사건(75) ; 강종헌
남조선민족해방전선사건(79) ; 이재문, 신향식
시위 중 xx 또는 사망 4명
전태일 - 평화시장 근로개선 시위중 분신xx
김상진 ; 서울대 시국성토 대회장에서 할복 xx
정귀한 ; 삼일정밀공업사 직원으로 회사 저임에 항의하여 xx
김경숙 ; YH 근로자로 신민당사에서 농성중 추락 사망
의문사위에 올려져 있는 명단 82명중 인정 불능에 해당하는(기각은 제외) 8명
양상석- 71년 신민당 공천 배제설 후, 복부를 칼로 그은 모습으로 사망
김창수- 71년 총선 투표관련 조사로 참고인 대질을 위해 서울동행중 김제역 사망
정법영- 청주 도시산업선교회 150일 단식농성 중 약물중독 사망
장준하- 포천 약사봉 계곡에 동료와 떨어져 홀로 하산하던 중 추락 사망
최종길- 중정에서 조사받던 중 7층에서 떨어져 사망
장석구- 인혁당사건으로 조사받던 중 뇌출혈 사망(평소 혈압이 높았다 함)
심오석- 서방정토로 간다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삼랑진으로 가출 후 행불
이승룡- 경북대내 경찰정보원으로 활동하던 중 야산에서 사망
이렇게
박정희 대통령 통치시절 죽은 사람들은 총 48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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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백발마귀님이 말하조자 하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 숫자란 위에 48명중 가감된 숫자이겠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수 있는 경부고속도로 공사 할때 토지보상액의 최대치를 전지역 땅값의 평균값으로 일괄해서 처리하였죠.
그렇다면 당연히 토지 수용에 대한 불만이 있었겠죠? 그러나 그당시 어느 언론에서도 이런 불만은 하나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506필지, 20만5천333㎡ 의 미보상 토지가 있었습니다. 토지는 수용되었는데 보상은 30년동안 한푼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라면 이런 개인에대한 재산권 침해에 대하여 분노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경부 고속도로로 인해서 대한민국 전체적으로는 큰 혜택을 받았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을 무시하고 마냥 찬양 하는 것이 정말 올바른 것인가요?
30년이면 그당시 재산권 침해를 받은 사람중 돌아가신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분들 모두 억울함을 가슴에 안고 돌아 가셨을 겁니다.
그러면 박정희의 통치로 인하여 억울 하게 죽은 사람의 숫자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건가요?
그당시 고문받고 빨갱이 낙인으로 인하여 고통받은 사람들 중에서 보상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 다 포함하면 그 수는 또 어떻게 되나요.
박정희와 그 추종세력의 기본 인식이 '큰일을 하려면 사소한 문제는 잊어라.' '소통할수록 효율은 떨어진다.' 이런 마인드였는데 그로인한 사회적 해악이 결국 오늘날의 갑을 문화로 발전한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애국보수 분들 그 나라사랑 하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기본적인 수준은 좀더 높이시길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