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progressive)가 공산주의를 전제로 한다?
진보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공산주의적 역사해석 즉, 변증법적 역사발전 내지 유물사관을 전제로 합니다. 역사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시대, 자본주의가 그리고 사회주의를 가쳐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가 실현되는 공산주의로 가는게 역사적 필연이라고 보는 사관인데...그렇게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 역사발전 상의 진보로 보고, 이를 신념화한 것이 공산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즉, 진보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Marxism을 기반으로 형성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진보 개념을 인정한다는 것은 우리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인민, 민중 또는 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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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는 죄가 아닌데, 매번 틀린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늘 당당하게
남들의 무지를 비판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진보라는 개념은 맑시즘의 단계론적 역사관에서 나온게 아니라,
18세기 계몽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그 이후로 쓰여진 개념입니다.
즉, 공산주의가 아니라 그 이전인 자본주의 형성기부터 봉건사회나 야만을 타도하고,
이성과 자유에 기반한 사회를 형성하려 한 시기부터 많이 쓰인 개념이에요.
오히려 자본주의를 포괄하는 '근대성'에서 출발한 의미입니다.
따라서 칸트, 헤겔 뿐 아니라,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사상가 들이 빈번하게 사용한 개념입니다.
특히 진보의 교의 (idea of progressive)는 근대성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20세기 중후반 들어서는 푸코나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러한 진보의 교의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진보의 교의와 근대성의 논의에 대해선, 요즘에는 더 좋은 책들도 많겠지만,
제가 학부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건 윤평중 교수의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였습니다.
참고하시길)
물론 세종님이 말씀하신 맑스의 역사발전론도 관련은 있는데,
맑스의 역사발전론에서 진보주의가 등장했다거나,
진보주의가 맑스의 역사발전론을 전제로 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대체 이런 뚱딴지 같은 소리를 어디서 듣고 하시는 건가요?)
맑스의 역사발전론 자체가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특히 맑스 스스로가 헤겔의 적통을 자기가 이은거마냥 설명할 정도로
헤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맑스의 역사발전론이 헤겔의 역사관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기본 아이디어는 유사하지만 차이는 꽤 있습니다. )
맑스가 '진보'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
'진보'가 맑스의 영향을 받은게 아닙니다.
물론 이후 진보주의에 맑스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만,
기본적으로 '진보주의'는 맑스주의와 무관하게 형성된 것이고,
근대성 혹은 자본주의가 일정한 모순을 형성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려는 일련의 흐름들이 현대의 진보주의에 섞여들어
19세기 후반 및 20세기의 진보주의에는 맑스주의가 영향을 줬다 정도로 이해하는게 맞습니다.
애시당초 진보의 의미가 기존의 봉건적 야만을 타도하는 근대성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특히 근대가 완성된 20세기 이후로는 상당히 추상적인 의미가 강해졌고,
보수성향 분들이 쓴다고 해서 틀린 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유럽의 경우 노르웨이의 극우 총기난사범이 가입했던 극우정당 이름이 진보당입니다. 영문명 Norway Progress Party)
물론 현대의 진보주의가 사회민주주의나 사회주의를 지칭한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진보주의로 묶어 설명하는 견해인데
그런데 이 경우에도 진보의 개념이 공산주의를 전제로하는 것은 절대 아니고,
현대의 역사적 상황에서 저렇게 형성되었다, 정도로 보는게 옳습니다.
현대의 진보주의를 특정한 정치적 입장만을 제한해서 이해하더라도,
그 범주가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들마다 말이 달라요.
글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라곤, 맑스주의가 본래 민족주의 개념과 반대되는 국제주의라고 서술하신
부분 정도입니다. 이 부분은 간만에 옳은 말씀을 하신건데,
공산주의가 민족주의로 변질된게 무슨 전술적 변경이고 음모인것 마냥 서술하셨는데
그건 아니고 이것 역시 공산주의의 역사적 경험에 따라 변질된 거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가령 호치민 같은 경우도 스스로 공산주의가 민족주의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고백한 바 있지요.
민족주의가 공산주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공산주의는 맑스 이론에 따르면 당시의 성숙한 자본주의국가에서만 성립가능한 것인데
(그래서 유럽 맑스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을 의외로 받아들였고, 주구장창 독일만 바라보고 있었죠)
실제로는 후진 국가들에서만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고
이들 국가의 특징이 노동자가 다수가 아니라, 농민이 다수이고,
제국주의의 피해국가였던 제3세계였기에 민족주의가 강하게 결합하면서
변질된 것이죠.
특히 스탈린 스스로 국제주의를 포기한 영향도 크구요.
아마 세상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론 속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음모론에서는 좀 깨어나시는게 좋습니다...
세종님의 가장 큰 문제는 사실 무지라기 보다,
부족한 지식을 마치 진실인양 호도하면서
다른이들을 폄훼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또 반성문 한 편 쓰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