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노리오 회장은 소니의 3대회장으로 있던 90년대초에
잘못된 판단을 하게되는데 앞으로 사양산업이 될수밖에없는
브라운관티비 공장을 수조원을 들여서 미국 캘리포니아에 건설한것이다
거기에 더해 95년에 역사적인 엔고에 모리타회장 주도로 인수하였던 컬럼비아 영화사등의
거액적자에 주력산업이던 전자부문의 부진까지 겹쳐서 소니는 사상최악의 적자를
내고야마는데 이로인해 오가노리오는 회장직에서 물러나야만 하는상황에 처한다
2대회장이던 모리타 아키오는 공식석상에서 3대회장에게 4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뽑아라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오가노리오 회장은 자신의 라인 엔지니어 출신중 누구하나
마음에 드는 자가 없었다 마침 모리타회장은 병원에 입원중이었고 오가는 모리타부인에게
부탁하였으며 그녀가 병상의 모리타회장에게 의향을 물었다
"오가가 4대회장문제로 심하게 고민하고
있는것같던데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더라도 4대회장으로 괜찮겠어요"
건강이 안좋던 모리타회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오가는 상무이던 이데이 노부유키를 단번에
회장으로 발탁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보인뒤 물러났다 이데이가 취임한뒤에 역플라자합의로
인한 엔저 , 오가가 물러나기전 허락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의 대성공등에 힘있어 97년에
5500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소니는 화려하게 부활하였고 이데이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최고의 CEO로 추앙받았다
2000년대 들어 소니에게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하는데 첫째로 소니의 MD가 애플의 아이팟에 밀려
휴대용음악재생기기의 절대강자이던 소니에 타격을 입힌것이다 또한 TV사업부등에서도 말썽이 일어났는데
LCD와 PDP가 생각보다 빨리 가격이 내려가며 대중화되기 시작한것이다 소니 내부에서도
예전부터 LCD에 투자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데이 회장은 "백라이트패널을 사용하여 화질이
떨어지는데다 여러업체가 만들고있는 LCD는 소니의 방식에 맞지않는다" 며 브라운관티비로 더 시간을
끌다 한번에 OLED티비로 넘어갈려는 계획으로 LCD에 투자를 하지않았다 트리니트론 기술을 독점하며
세계에 티비는 소니라는 공식을 심어준것처럼 독자적인 OLED기술로 세계를 또한번 제패하겠다는 계획인
것이었다
하지만 소니가 놀랄정도로 LCD의 대중화는 빨랐고 결국 소니는 삼성과 손을 잡고 LCD패널을 합작하여
생산하여 LCD티비를 그리고 다른 업체로부터 PDP패널을 공급받아 양대 평판티비산업에 뛰어들게되었다
대형 LCD패널 기술이 떨어지지만 앞선 기술의 삼성과 합작하여 안정적으로 패널을 공급받으면서 소니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하여 세계시장점유율을 유지.. 최대한 빨리 OLEDTV를 개발상용화시키는게 소니의 목적이었다
그러던중 2005년 이데이회장이 실적에 의한 추궁을 받아 해임되었으며 하워드 스트링거 5대회장이 취임하였다
하워드 회장은 PDPTV에서 철수 LCD에 전력투구 , 비주력사업철수등으로 소니를 구조조정하고 TV산업에 주력하여
북미에서 LCD티비 가격인하등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단행하였다 뿐만아니라 블루레이를 세계 표준으로 만들기위해
미국영화사와 블루레이 로열티를 나눈다는 파격적인 계약까지 이끌어내며 차세대광매체 표준까지 승리하는등 초기에
는 성공가도를 달리는듯했다
하지만 그무렵 소니가 경악할 사건이 일어나게되는데 삼성의 신형TV가 등장한것이다
판매량에서는 전세계1위를 달성하였지만 TV가격 자체는 브랜드가치때문에 소니를 넘을수없던
삼성에서 가격에서도 역전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발한 백라이트를 LED로 바꾼 LEDTV가 그것이다
최초의 LEDTV는 소니가 퀄리아라는 브랜드로 내놓은 소수의 부자들을 위한 LED백라이트 LCDTV였는데
누구나 인정하였지만 퀄리아브랜드는 대실패였으며 하워드회장에 의해 폐지된 상태였다
너무나 비싼 가격으로 대중화는 요원해보였기에 소니에서는 OLED에 모든 전력을 기울였지만 삼성에서는
원재료를 바꿔가며 연구한끝에 대량양산화하여 LEDTV라는 이름으로 대중화시킨것이었다 대부분이 LCD티비
랑 비슷하기에 비록 그것이 거짓된 이름이라고 비판받을수도 있겠지만 북미의 유통사들은 이 이름을 받아들였고
소니가 이를 뒤따라 생산하면 이를 인정하고 후발업체로 전락하고야 마는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소니는 후발업체로 전락하였고 다시는 TV산업을 주도하지 못하며 삼성이 내놓는걸 따라하기로 전락하였으며
그들이 그토록 염원하였던 대형 OLEDTV도 삼성과 LG에서 먼저 개발하고야말았다
이외에도 휴대폰에서 잘못된 합작이 또 있었다 스웨덴의 에릭슨과 소니의 합작인 소니에릭슨이 그것이다
일본은 2G통신에서 독자규격으로 인하여 북미와 한국의 CDMA 유럽과 그외의 지역들에서 GSM으로 통일된
규격에 적응하지못하고 모조리 패퇴하고있었다 삼성과 LG가 GSM지역에서도 성공한걸 보면 패배자의 변명
일수도있겠지만...
그러하여 소니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중이던 에릭슨의 유럽 유통망과 GSM특허를 노리고 합작을
시도하였고 한동안은 브랜드가치덕분에 세계4~5위권으로 건재하였지만 리먼쇼크로 인한 2군업체들의 쇠퇴
스마트폰 혁명으로 멸망할뻔하다 일본내수에 힘입어 연명하고 있는 상황에 처하게된게 지금의 현실이다
합작뿐만아니라 독자규격도 소니쇠퇴를 앞당겼는데 대표적인게 메모리스틱과 UMD이다
도시바 , 파나소닉 , 샌디스크의 합작이던 SD카드에 밀리던 메모리스틱 규격을 살리기위해 삼성으로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대신에 삼성은 자사 제품에 메모리스틱 슬롯을 설치해주는 거래를 하였지만 현실은 광범위
하게 사용되던 SD카드를 이길수없었고 삼성과의 거래로 자국반도체 업체들만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또 PSP가 크게 성공할거라는 잘못된 판단하에 UMD슬롯을 설치하여 이동식 광디스크 표준을 꿈꾸었지만 PSP
는 일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역에서 실패하여 기대했던 규모의경제 효과로인한 UMD가격인하는 어려웠으며
낸드플래시가격이 빠르게 내려가서 사실상 UMD라는게 거추장스러운 퇴물로 전락하고야말았다
뭐 하나 제대로되는게 없는 소니였는데 전략인 경영자의 판단 전술인 엔지니어들의 기술개발이 모두 실패하니
거의 모든 영역에서 패배하고 멸망하는게 그들이였다 전방(완제품)의 패배는 후방(부품)에도 영향을 미쳐 소니의
전지와 디스플레이사업부도 모두 적자로 전락하였으며 다행히 일본정부에서 패잔병무리들이던 일본 가전3사의
디스플레이업체들을 인수해가서 짐을 덜었지만 전지사업부는 여전히 골치덩이로 매각루머만 나오고있는 상황에 처했다
카메라를 제외한 모든 소니의 제품이 퇴물로 전락하긴 했지만... PS3의 실패는 워낙 유명하니 논하지않기로 하겠다
앞선 기술 , 자본 , 브랜드가치를 가진 그 유리한상황에서 이렇게 몰락한데는 그들 자신의 실력부족에 판단미스
더하여 경쟁사인 한국업체의 경영자들의 훌륭한 판단과 엔지니어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수있겠다
천지개벽하지않는이상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옛날처럼 전자산업의 주도회사로 부활하기는 어려울것이다
일본인들은 옛날 "전자입국 일본의 자서전"이라는 책이 히트하던 90년대초가 그립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