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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의 일생 전체를 통해서 봐야 하는 것이고 일시의 잘못에 낙인찍으려는 가생이좌파 분들의 노력이 대견합니다. 박정희를 친일이니 빨갱이라고 결론 짓기 위해서는 실제적 행동, 결과 등을 종합해서 봅시다. 박정희가 젊은 시절 출세욕이었든 기회주의자였든 또는 오판이었든 만주군관학교와 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근무 했고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입니다.
1. 친일 논란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기간은 1944.4월부터 1945.8월까지 1년 4개월이다. 혹자는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때려잡았다고 하나 1940년이후 만주지역에는 조선 독립군의 존재가 없었고 중국공산당 팔로군에 일부가 있기는 했으나 근본적으로 중국공산당 조직이었다. 러시아 적군에 속한 조선인 일부가 있기는 했으나 러시아군과는 불가침 협정으로 전투가 없었다.
박정희가 젊은날 출세욕이든 기회주의이든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은 잘 못된 일이기는 하지만 그가 1년여 장교로 근무하면서 친일의 실제적 결과로 가져온 것은 없다. 2005년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기구로 발족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진상규명위)’는 지난 2009년 4년 간의 조사를 마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해방후 그가 친일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 행위가 없음에도 만주군 장교 1년여 근무의 결과로 인생전체가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2. 빨갱이 논란
일제, 해방의 시기 초기 공산주의는 조선왕정과 일본 우파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사상으로 일반 대중들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파악하고 있던 이승만만 절대 반대를 외치는 정도였다. 625전쟁이후 북한의 공산주의가 어떠한 참상을 가져왔는지를 인식한 후에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뀐 것이고 김구의 경우도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거부감이 없었으며 어떤식으로든 통일 우선주의자였다.
박정희는 1946년 귀국후 그의 형이 대구폭동과 관련하여 총격으로 사망하고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 비밀 당원이 되었다. 그가 남로당원의 신분으로 있던 기간은 1946.10부터 1948.10 여순사건후 체포되기까지의 기간이니 2년을 남로당신분으로 있었다. 남로당에 가입한 행위, 체포후 전향하여 동료를 배신했다는 비난(남로당원 명단을 남한정부에 넘긴 것이 나쁜 행위라 하면서 빨갱이라고 비남하는 좌파 들의 논리를 보면 임수경의 탈북자에 대한 "이 배신자 새끼들아!"가 생가가난다) 등은 그의 잘못인 것이나 1948년이후 1979년사망시까지 그가 공산당 성향의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군인과 대통령으로서 북한에 대한 국방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2년여의 활동으로 그가 빨갱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지 않다.
세뇌교육이 참 무섭죠. 어릴때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냐고 하면 박정희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친일파와 빨갱이를 두루 섭렵한 인물을... 그런 인물을 실드쳐주니까
이명박 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되는거죠. 전과가 수없이 많고 각종 사건에 연루되있었지만 경제를 살려줄거라는 기대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결과는? 능력이 있어도 나쁜쪽으로만 사용하는데 그 능력이 무슨 소용인지...
실드쳐주는 사람들은 연쇄살인마가 후보로 나와도 뽑아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