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군 토벌했다는건 유언비어.
네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시절 토벌작전에 참가한 적은 있으나 그의 부대가 교전한 적은 없습니다 그와 같이 8단에 근무했던 조선인 선배들도 그가 독립군 토벌에 나섰다는 주장에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경군관학교 2기 출신으로 만주군 보병 중위로 근무하던 박정희는 광복직후 북경으로 가서 광복군 3지대 평진대대에 합류했습니다. 그때 3지대 대장이 김학규 장군이였고 박정희는 2중대장이였습니다.
와 친일파가 광복군 3지대 2중대장까지 했을라고?
김학규 장군은 1946년 9월 김구가 암살당하고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15년 징역을 언도하고 형을 살게 됩니다.
후에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고 김학규 장군을 복권 시키고 1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김학규 장군은 중풍으로 쓰러져 운신을 못하는데 박정희는 한학자 최서면을 시켜 김학규를 입원시켰는데 김학규 장군께서는 병석에서 입버릇처럼 '박정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자주하였습니다.
1967년 9월 20일 자택에서 별세하시고 박정희 정부는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하였습니다.
보면 알겠지만 김학규 독립군장군은 일생동안 일제에 맞써사우고 이승만 정권에 반대할정도로 목숨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박정희가 친일이였다면 그분은 절대로 박정희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지 않았을겁니다.
한편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 시절에 팔로군을 공격한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팔로군은 중국 공산당의 군대였습니다. 독립군은 아니였죠
일제 말, 독립군은 중국 내륙으로 이동한 상태였습니다.
류연산이라는 사람이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을 제시했다 명의훼손 혐의로 고소 당하고
경찰이 증거를 요청하니
'어느 중국책에서 관련 내용을 봤으나 책을 구할 수 없고 작가도 죽어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결국 증거는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왜 박정희는 독도를 팔아넘겼잖아 친일파가 아닌데 왜 우리 독도를 일본에게 팔아넘겼나?"
호사카 유지 교수의 말에 따르면
"박정희 때문에 독도를 포기했다"
<한일협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를 한.일담의 의제에서 제외하라"고 도쿄에 있던 이동원 외무부 장관에게 지시하면서 "본건은 한국 정부의 안정과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만약에 한국 측이 수락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일담을 중지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런 박정희의 단호한 방침에 일본은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겠다는 안을 거두어 들이고 독도 명칭을 교환공문에서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흘러갔냐면
박정희의 외교 덕분에 일본이 독도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는데
이게 이상하게 왜곡되서 "박정희가 독도를 팔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독도영유권이 훼손된 때는 김대중 정부 때 체결한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은 신-한일어업협정이였죠
참고로 박정희는 1965년 6.22일 소위 구-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때 독도는 우리 땅이였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독도를 거론했다는데 1965년 5월 17일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방미중인 박정희를 만나 한일협정 진척을 축하하면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으나 박정희는 장관급 회담을 거절하겠다고 맞섰습니다
독도는 1998년의 신한일어협정에 의거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바다가 국제법상 일본에게 영유권이 인정되었다는 겁니다.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때 이뤄진 협정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사람은 고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문재인은 박정희 이후에 일어난 문제를 박정희에게 뒤집어 씌우고 친일독재정권이라고 매도하면서
일본이 독도를 탐내자 박정희가 화나서 한말인 "네놈들한테 줄 바엔 차라리 폭파시켜 버리는 게 낮다"라고 한 말을 독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왜곡곡한답니다
"아니 그런데 박정희는 일본하고 독도관련 밀약을 했잖아 이게 팔아먹은거 아니냐?"
1.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 가능. 이의 제기하지마
2. 장래에 어업구역 설정할 때 중복이면 공동 수역으로 지정
3. 현재 한국이 점거 현상 유지. 경비원 증강시설 증축 불가능
4.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3번을 보면 한국이 실효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이 여러모로 큰이익을 보는 밀약이였습니다. 이때 군사력이든 경재력이든 한국을 압도한게 일본인데 이 조약에 따르면 모든게 다 같은 조건에 독도 실효지배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기서 일본이 이 조약으로 독도가 지네땅이라고 우기면 독도의 실효지배권은 우리 한국에게 있다고 서로 인정하면서 독도가 지네땅이라고 우기는 말도 안돼는 궤변이 일어납니다.
현재 일본은 이 조약을 부정하는데 이게 유리한 조약이였으면 끄집어 냈겠죠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 통수를 친겁니다
'광복후에 친일했잖아 굴욕외교 한일국교 정상화 이거 뭐냐?'
굴욕이라고 할수는 있지만 매국이라고는 할수 없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 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 달러,
무장으로는 3억달러, 차관 2억달러,
민관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
하는 조건으로 한일 국교 정상화를 타결합니다
저돈이 적다면 얼마나 많이 받아야할까요
배상액을 백억, 천억 준다 한들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은 용서될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물론이고요 당시에 이정도 배상액은 거금이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돈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 일본과 대치상태에 들어갔다가는 외교에 문제가 있습니다
국교정화를 통해 일보과 자유로운 경제교류를 가능하게 해서 상당한 이익을 봤다는거죠
실제로 포항제철소를 설립할때 박태준의 그 유명한 하와이 구상으로 일본의 대일청구권 1을 어렵사리 청구해서 포항제철소를 설립할수 있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대일청구권때문이라?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고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하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해서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통등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 하였습니다.
즉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아닌 다른문제로 다른나라는 보상비 못받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뭘했습니까?
미얀마, 태국 같은 나라들은 있는 돈으로 호텔이나 보트 짓고 놀때
박정희 대통령은 없는 돈으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반도체 사업, 자동차 관련에 국고를 쏟아붓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굴욕을 당하면서 돈을 빌려오고
국제무역협정에 가입할때 외국 위원들에게 식사대접할 돈도 없어서 박정희 자신의 월급을 가불해 식사를 했습니다.
거기다 박태준의 하와이 구상이라고 아시는지? 위에 포항제철소는 박태준이 차관을 구하다가 미국등 기업들이 잘하다가 갑자기 지원을 안해줘 제길 박태준은 이넘들이 통수로 미쳐버릴 지경인데 하와이에서 놀다 가랍니다.
그래서 하와이에서 절망하고 있는데 그 유명한 하와이 구상이 떠올라서 즉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대일청구권 관련 이야기를 하고
일본으로 가서 그것도 어렵사리 1억 달러를 받아와 포항제철소를 설립했습니다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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