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국민방송, 누구든 할 일이다
밑으로부터의 항쟁인 동학농민운동 당시에도 공영방송이 있어 이 사안을 뉴스로 다룬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이야 운동을 또 주도 인물인 전봉준을 기념하지만 당시에는 외국군을 끌어들여서라도 진압해야 할 ‘난동’ ‘폭도’에 그쳤다. 예상컨대, 잘해야 이 쪽 저 쪽 편 입장을 반씩 갈라 논평 없이 전했을 테고, 지금 같은 엄혹한 언론 구조라면 농민군을 포위하는 관변성을 여과 없이 노출됐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때처럼.
공영방송 살리기로 불공정 미디어 환경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있다. 정권의 전리품으로 오도되는 공영방송의 위상을, 정치 환경과 무관한 ‘국민의 것’으로 재정립하는 노력은 절실하다. 그러나 국민TV 건설 논의를 야권의 대선 패배 이후 ‘진영 방송’ 만들기로 규정하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 작년 11월 조사에서는 국민 절반이 뉴스를 방송으로 접한다고 답했을 만치 영향력이 막심한데다, 이념적 양극화가 격심한 터라 한국 여론시장에서 공영방송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공정성 구현' 방편은 기계적 중립, 양비론이다. 여당을 비판하면 맥락 없어도 야당 비판할 분량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파생될 정치혐오주의는 책임지기 힘든 구조다. 공영방송 회복이 필요하지만, 모든 미디어 스트레스의 정답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국민TV의 할 일을 야당이나 그 진영에 속한 정치인 밀어주는 기능 정도로 이해한다면 유감이다. 여당 쏠림이 강한 언론지형을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는데,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정반합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미디어가 생긴다 한들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겠는가.
다만 현 시기에 요구되는 뉴스의 덕목은 적극적 균형성인데, 이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권력과 자본이 절대강자인 현실에서, 이들에게 좀 더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노동자가 철탑에 올라 칼바람 맞을 때, ‘기업의 대화노력’와 ‘노동자의 강경투쟁 자제’를 동시에 주문하는 자세가 아닌, 노동자가 고용 나아가 목숨을 걸고 벌이는 극한투쟁의 배경을 정확히 짚고 이들에 대한 목줄을 쥔 기업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런 ‘경향성’이야 말로 책임 있는 중립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온 국민이 저널리스트나 학자처럼 이 매체 저 언론 뒤져가며 시각의 차이를 대조 비교해 정당한 것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수용자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권력에 장악당한 지상파, 친여당 성향의 종합편성채널, 친자본 일색의 경제채널로 도배된 TV의 편파적 담론 구조는 외면하고 싶어도 고개만 돌리면 직시하게 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유유상종 미디어가 쏟아내는 '동일한 목소리'가 ‘대세’ 또는 ‘시대적 정의’로 오인될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방송 뉴스 때문에 야권이 패했다는 ‘TV 결정론’에 전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우려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대안 마련이 불요한가.
‘우리끼리 보다 마는 TV뉴스’의 우려도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담아낼 방송 플랫폼 구축 또한 녹록치 않다. 재정 기반 확충, 솔직히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른 TV 뉴스는 플랫폼과 이념을 뛰어넘는 힘이 있다. 지금 그런 기본의 방송보도가 갈구되는 때가 아닌가. ‘더는 못 보고 듣겠다’는 시민의 불만은 일시적인 게 아니라 누적되고 고양된 것이다. 그만큼 요구와 염원은 성숙돼 있다. 뜻 있는 언론인은 이에 응답해야 한다. 누구든 해야 할 일이다.
저는 이른바 공영방송이 중립을 지킨다면서 취하는 양비론과 기계적 중립에 매우 염증을 느낌니다.
위에 김용민의 말처럼 결국은 정치 혐오로 가기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따라서 ㅂㄱㅎ가 공영방송의 사장 임명을 투명하게 한다 하여도 국민TV의 존재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