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기진전에 일제로부터 권력이양받고 왜넘들을 보호해준 집단이 건준이었는데 여긴 민족주의자+사회주의 좌익들이 연대하던곳이어서, 여기 동참하지 못한 세력들이 모여서 만든게 한민당이었습니다.
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하지못할 세력이란게 누굴까여? 바로 일제시대때 지주세력과 자산가들, 그리고 소위 빨갱이들의 정체가 뭔지 아는 소수의 지식인 언론인과 민족주의자들이었죠.
좌익과 맞서기위해 연대를 한거라 문호가 열려있었고 그래서 일제시대떄 관리들이나 친일파로 지목된자들역시 가담할수있었던 배경이죠.
한민당 수뇌부들의 공통점이 부유한집안+유학파란겁니다. 해방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이들을 택한 이유가 정당의 성격뿐아니라 (미국, 영국식 자유민주주의) 일단 이들과 언어부터 통했기때문이죠. (윤보선 - 일본, 중국 영국유학, 조병옥 - 미국유학)
밑에글에 누가 쓴
"일제가 물러나자 일제치하서 말단 순사하던놈은 경찰서장이 되고 면서기는 면장이 되고 군서기는 군수가 되고 군수는 도지사 장관이 되고"
이게 한민당 작품이란 얘기임.
일제시대 경찰들 기용한 장본인이 바로 미군정때 경무국장이던 조병옥(한민당 창립멤버, 그뒤 민주당 대통령후보까지됨)의 작품이었져. 나중 대구사태때 일제시대경찰이 기용된게 시 발점이라 이관련해서 미군정에 불려가 해명해야했던것도 조병옥이었죠.
말단직은 몰라도 도지사경우는 일단 일제시대때 도지사들은 미군정에 의해 파면되고, 미군장교들이 맡았다가 한국인으로 교체될때 인사들이 한민당이거나 우호세력들이었슴. 구자옥 - 경기도지사 (한민당), 정일형 - 충남도지사 (한민당)등... 여기서 친일인사들인 도지사들이 있었긴한데.. 애초부터 한민당의 성격이 저러다보니 벌어진일이었고..
"일본군서 소위 .중위하던 하급장교 출신들이 20대후반에 별을 달고 사단장이 되고
하사출신이 중대장.대대장이되고
일본군 보급부대중좌(중령)출신으로 전투부대근무 경험이 전무한자가 30대 에 육군참모총장이 되고"
경찰과 다르게... 일본군인출신경우는 그당시 친일파로 여기던 부류는 우익이나 좌익에서도 없었을때였죠.
김구역시 해방전후에 일본군 만주군출신들을 영입에 적극적이었고, 이게 해방될때 광복군 20만이란 소리가 나온배경이었지. (박정희역시 해방뒤 북경에가서 광복군 제3지대 제1대대 제2중대장으로 됐다가 귀국했었슴)
백선엽의 경우는 간도특설대에 있었던자였는데 해방뒤 그냥 귀국해서 조만식선생의 비서로 있었었고.
제주4.3때 인민유격대장이던 이덕구.. 일본군 소위출신임, 남로당 간첩이던 제주 9연대 제2대대장이던 오일균 소령은 일본육사출신이고,
여순반란때 줄줄이 잡혀간 군장교들... 일본군출신들 꽤된다 최남근 지창수 홍순석... 일단 박정희부터도 만주군출신이다. 친일파를 왜 남로당이 영입했는가는 생각해봤는지 -_-..
만약 그당시 일본군 장교출신 = 친일파라는 생각을 당시 사람들이 했더라면 당시 좌우모두 친일파들 기용한 자들이란거죠.
"친일자본가 지주들은 일본인들이 놓고간 공장과 토지등을 헐값에 특혜 불하를 받아 막대한 부를 챙기고
그부를 바탕으로 정계에대거 진출에 재계에이어 정계를 장악하고
이제 부에다 권력까지 가지게 됨
친일파들에게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린것임"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김지태였지.
일제시대때 군수업체인 조선주철공업합자회사운영하다가 해방뒤엔 아사히견직을 불하받구 그뒤 삼화고무인수한뒤에 부산일보랑 문화방송인수한 케이스.
한민당은 돈은 있지만 대중적인 지지도는 저런면때매 떨어지던 정당이라 독자적으로 나설수없었던 상황이고, 국내에서 건준을 견제하기위해 젤 먼저했던게 해외독립운동가들을 지지했었죠. 즉 김구랑 이승만노선에 서서 지지했던건데, 이들이 주장하던 반탁이 대중에게 먹히면서 국내 좌익세력을 압도해나간뒤엔 김구와 이승만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이승만을 밀어준거였고 (김구랑은 통합직전까지갔었다가 무산되면서 장덕수 암살뒤 이승만에게 완전히 돌아섬)
그뒤 승자가 이승만이됐는데 정작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나선 그전 국회의원선거때 한민당의 지지도가 낮은걸 확인한뒤라 한민당에게 장관직을 딱 2자리만주고 그뒤 토지개혁추진하면서 한민당과 갈등빚다가 결국 한민당이 뛰쳐나가 민국당.. 야당이 되면서 그때부터 이승만이 독재한다고 주장했었져.
"이들 세력을 강력히 비호해주던자가 있었으니 바로 이승만
오랜 미국생활으로 김구의 임정세력.남로당 세력.국내파 독립운동세력에비해 국내기반이 전무했던 이승만은 이들을 비호해주는 대신 강력한 충성을 유도함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과 국민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승만을 자신들의 보호막을보고 똘똘뭉쳐 이승만을 강력히 지지비호함 "
당시 이승만이 대통령될때 국내상황이 이미 미군정때 한민당에 의해서 일제시대 관리 경찰들이 기용된 상태고.. 여순반란이 있었었고 제주4.3사건은 터지던 와중이었죠.
이승만이 반민특위가 박흥식 체포해갈때 풀어주라 했나여? 노덕술같은 일제시대경찰 체포해갈때 풀어주라한거였져.
저런상황에서 정권의 힘이랄수있는 경찰군인들을 친일청산하겠다고 다 짜르고 새로뽑나여? 김구는 물론 누구라도 대통령이었어도 안했을일임..
반민특위가 와해된게 49년6월인데 그뒤 딱 1년뒤 터진게 6.25전쟁임.
암튼..48년말에 이승만하고 한민당은 토지개혁때문에 갈라지고 한민당은 신익희랑 합쳐서 민국당이되죠.
이승만을 지지한다던 친일세력과 이승만이 비호한다던 세력이 저때 떨어져나갔단얘기임..
근데 웃긴게 한민당은 나가면서 이승만 공격한게 이승만이 독재한다면서 그때부터 하던말임.
친일세력이 가담한 한민당은 이승만을 밀어준거였지 이들이 이승만지지세력의 일부이지 전체가 아니었죠.
한민당 떨어져나간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랑 이범석의 족청(원외자유당)이 자유당으로 된거죠.
사사오입뒤엔 원내자유당애덜이 탈당(장면, 김영삼등)해서 민국당이랑 합쳐서 만들어진게 민주당이고
한민당계가 민주당 구파(윤보선, 조병옥)가되고, 자유당 탈당파가 민주당 신파(장면, 김영삼)가된겁니다.
자유당은 원내자유당이 탈당하면서 원외자유당 즉.. 이범석의 족청계열이 장악하게되면서 이범석은 견제당해 물러나고 이기붕이 2인자가되었구..
여기서 보수 = 친일파라 주장하면서 이승만 들먹이는거부터가 에러란 얘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