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토록 직선운동만 하는 벌레가 있고,
앞만보고 가는 그런 벌레가 있다면...
그 벌레 바로 옆에서 닭 한마리가 잡아먹으려
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어도...
벌레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이 벌레의 그러한 능력적
제한이 선천적이라 가정하였을 때,
2차원적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는 포식자에게는
잡아먹힐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그 확률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벌레와 같은 방식의 운동을 하는
벌레들이 많다면 90도 꺽인 방향의 직선운동을 하며 교차하는
다른 벌레와의 커뮤니케이션 교환으로 위험을 인지할 수도
있고, 냄새와 같은 다른 차원의 접근법으로,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회피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가전산업을 예로 들자면,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고, 현재도 기술력 그 자체로는
크게 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억 이상의 인원풀을 자랑하는 내수에서
너무 단물을 빨았던 나머지,
해외분야의 니드를 경시하다가 결국 하나씩
도태되어 가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평가하고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할 때,
어느 한방향만으로 편향된 관시를 수행하면,
그 차원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일견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결국은 이미 상기한 닭의 먹이가 되는
벌레의 운명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 어떤 객체가 잘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과
그 객체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위치에 놓인 자신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항상 있다는 것에 대해서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잘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격려하되,
자신이 보지 못하는 그 이면을 보는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진중히 검토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 의견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내가 보고 있는
점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또한 높기 때문입니다.
즉, 전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발전과 생존으로 가는 길이지...
자신은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고 타인은 타인의 의견만을
설파하는 폭로 내지 강의 형식의 의견개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단지
'말' 이라는 물리적 현상 그 자체가 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국정원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도,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이 분명 상존한다고 봅니다.
그 상위주체인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칭찬할 점은 칭찬하되,
해당 주체를 비판하는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도
귀를 닫으면 안됩니다.
일견 말이 안된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어도
고려헤서 참작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영향선도 그려서 되도록 따져보고요...
그러다보면 정답은 아닐지라도 결국 비교적
허용오차 안에 수렴하는 대안이 늦더라도 결국 나온다고
봅니다.
뭐 수학으로 따지자면 뉴튼랩슨 법 같은 접근법이겠고,
철학으로 보자면 변증법 비스무리하겠죠...
다시 말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단지 답답함을 풀기 위한
기재를 떠나서 이제는 삶의 문제에 다다랐다고 봅니다.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자꾸만 급진적인 행동끼리의
충돌로 표상되는 작금의 현실도 결국 이 소양의 결여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능력이 유한하고 범 우주적으로 봤을 때, 정말 미천한
신체능력과 사고능력을 가졌습니다.
스스로 신의 능력을 가졌다 판단되지 않는한
커뮤니케이션과 그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예의를 떠나 결국 인류의 생존의 문제와
밀접하게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닭하고도 싸우기 힘든데 벌레끼리 아웅다웅해서야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조금 더 진중하게 타인의 의견을 검토해 보고
다각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