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월남의 대선 후보로 나와 2위의 득표율을 보일 정도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온
쭝딘주는 월남패망이 지난 뒤 공산당 간첩으로 밝혀졌다.
1967년 7월 18일, 월남의 임시재헌국회는 대통령 입후보자들에 대한 적부 심사를 통해 11명의 대통령 후보를 발표한다. 이들 가운데 변호사 출신의 쭝딘쥬((TRUONG DINH DZU,張廷裕)가 있었다. 용공주의자라는 의심에 쭝딘쥬는 스스로를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이며 진실한 불교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월남 대통령 선거에서“우리 월남민족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하고 있으며, 외세마저 끌어들여 우리 동족의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피는 흘러 내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 보실 때 얼마나 슬프시겠습니까?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월맹 폭격을 즉각 중지시키고 월맹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남북관계를 해결하겠습니다. 저를 찍어 주십시오.” 라고 연설했다.
월맹에 의한 공산통일후 월남 패망의 1등공신이었던 쭝딘쥬 역시 공산당에 의해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된다. 쭝딘쥬는 그곳에서 하루 100g 가량의 배급을 받으며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1980년 중반에 사망한다.
월맹 공산당은 재판에서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반체제운동을 벌이고 기득권을 저주하는 너희들은 사회주의에서도 틀림없이 반체제 작당을 벌일 것이다. 우리에게 적극 협조한 인간일수록 철저히 죽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선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