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news.naver.com/read.nhn?oid=005&aid=0001254815&sid1=110&mode=LSD
두 광장의 진영 전쟁은 신념의 과잉이 초래한 극단적 소모전이었다
생각의 다름을 조율할 줄 알고 선의의 정책도 불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여러 정책이 선의에서 나왔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자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한 주52시간 정책의 취지가 어떻게 나쁜 것일 수 있겠나. 이런 선의의 시도가 불의한 결과로 이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정책마다 목격해야 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최저임금 생활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주52시간이 과로 대신 근로 자체를 가로막는 역설적 결과가 일상이 됐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정부의 시선은 과거에 옳았던 가치에 머물러 있다. 옳다고 믿는 바를 좌고우면 않고 추진하는 것은 이제 무능한 일이다. 그것이 여전히 옳은지, 지금 해야 하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열심히 좌고우면하는 정부가 필요해졌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진 최저임금 생활자들, 출퇴근이 따로 없는 실리콘밸리와 경쟁하는 기업인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공정이란 가치가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의 정규직 일괄전환은 공정에도 여러 얼굴이 있음을 보여줬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공정한 사회를 위해 파격을 단행했는데, 감사원은 그 과정에서 특혜성 채용과 채용 기회 박탈의 불공정이 벌어졌음을 발견했다. 임금이라는 ‘결과의 공정’을 이루려 했더니 채용이라는 ‘기회의 공정’이 훼손되고 말았다. 공정의 한 가지 얼굴만 바라본 탓이었다. 이 시대의 공정은 밀어붙여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측면을 살펴 다듬어가야 하는 것이다. 공정처럼 명료해 보이는 가치도 이렇게 다층적인 세상에 보수-진보 두 진영의 낡은 잣대를 들이대는 접근법은 어이없게 순진하다. 그것은 거악이 존재하던 시절에나 통했을 내 편, 네 편의 이분법이어서 신념의 과잉을 부르고 역설의 함정에 번번이 빠진다. 두 차례 보수 정권의 실패와 임기 반환점을 맞은 진보 정권의 난맥상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두 진영에 속하지 않은 정부를 경험하지 못했으니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만약 그것을 중도나 제3지대라 한다면 중도의 가치와 제3의 길은 이런 것일 테다. 소득이자 비용인 최저임금의 양면을 살필 줄 아는 정치, 정책을 작명할 때 선명한 ‘탈원전’ 대신 유연한 ‘친환경에너지’를 택할 줄 아는 정치, 옳다고 믿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앞세우는 정치. 그런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서초동도 광화문도 싫었던 많은 사람이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칼럼의 마지막 문단이
정말 핵심입니다.
중도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짚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