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됐다. 전쟁은 3년이었지만 휴전은 20배인 6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협정에서 휴전선 155마일(약
250㎞)을 육상 경계선으로 그어졌다. 휴전선 남북으로 각각 2㎞씩 비무장지대(DMZ)를 두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유엔군은 해상봉쇄선인 '클라크
라인'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이른바 NLL이다. 문제는 이 NLL이 어떠한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으며 유엔에서조차 거부당한 것이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NLL이 다시 거론된 것은 1991년 12월 13일. 이날 조인된 남북 기본합의서 10조에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에 대해서는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해상 경계선은 계속 협의하되 합의 이전에는 현재의 관할지역을 유지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이은 남북 기본합의서가 노태우 정부 시절 채택됐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72년 7·4 공동성명이 나왔고
노태우 정부 때 이를 구체화한 기본합의서로 연결된 것이다. 햇볕정책의 씨앗이 이때 이미 뿌려졌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기본합의서
10조의 모호함은 이후 1, 2차 연평해전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NLL 논란이 이성적이지는 않다. NLL 자체가
불확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되 이 애매모호함은 정전협정 이후 60년간 유지됐다. 그 과정에서 실효적 지배가 있었고, 북한의
끊임없는 도발로 피의 분쟁이 있었으니 정서적으로 민감한 선인 것은 분명하다.
일각에선 이를 영토선이라지만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규정에 비춰 실질적 해상 경계선이라는 게 맞을 듯하다. 영토선이 아니라는 측은 국민의 감성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
비무장지대는 NLL과 다르다. 하지만 성격이 유사하다. 말이 비무장이지 실제론 중무장 지대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이후 무려 3000건의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사상자 숫자는 충돌 건수로 보아 NLL보다 훨씬 많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DMZ나 NLL이나
화약고인 것은 매한가지다.
NLL 논란이 정국을 뒤흔드는 와중에 박근혜정부가 DMZ 평화공원 조성을 북한에 제의했다. 'NLL과
DMZ는 다르다'는 게 여권의 논리지만 헷갈린다. 국민 정서법상으론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NLL과 달리 거부감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다를 게 없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정부는 남북 화해협력 사업을 제안했다. NLL 논란을
일으킨 공동어로 수역이 첫째고, 해상평화공원, 한강하구 공동 이용수역, DMZ 평화생태공원, 인천~해주 서해 경제특별구역이
그것이다.
이리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은 동일하다. 긴장 완화와 평화 협력은 정권마다 추진했던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햇볕정책을
놓고 퍼주기 논란을 벌이는 것이나 NLL 포기발언을 했다, 안했다로 감정싸움이나 벌이는 게 과연 얼마나 역사의 진전에 도움이
될까.
이번 정부의 DMZ 구상은 핵 포기의 전제가 없다. 그럼 NLL을 공동어로 구역으로 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DMZ는
손해가 없고, NLL은 손해가 많고 그런 것인가. 감정적이고 분파적인 접근은 이제 접어두고 실현 가능한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악순환을 반복해서야 될 일인가. 자제와 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