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연합제안
대한민국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후 2013년에 이르기까지
20여년 간 지속되게 국가연합을 주장해 왔다. 노태우 대통령의 통일안은 그 이후에
거의 변한 적이 없다.
고려연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차이는, 고려연방제는 빠른 시일 내에 단일한 헌법을 제정하고
단일한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지만, 낮은 연방제는 단일헌법 제정과 단일의회 구성을 천천히
또는 전혀 시도하지 않고, 일단 "남북한만의 유엔", "남북한만의 유럽연합"을 설립해서 함께 교류
화해하면서 상당기간을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고려연방제와는 차이가 있다.
1973년 고려연방제에서는 대한민국에 주한 미군 철수를 선조건으로 요구했지만,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주한미군 주둔의 불가피성에 대해 이해를 표시하여, 사실상 선조건에서 취소했다.
주한미군 철수가 선조건인 고려연방제와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낮은 고려연방제의 차이이다.
유엔 보다 연합정도가 강화된 유럽연합의 모델을 모방한다면, 통일중앙은행에서
남북한간에 통일된 화폐를 발행할 가능성도 있다.
원래 연방제는 군통수권은 연방대통령이나 연방총리가 단독 보유하는데,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는
군통수권을 남북이 현행대로 따로 보유하자는 것이어서, 이는 연합제이지 연방제가 아니다.
1973년 북한이 연합제와 연방제의 용어 차이를 혼동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한국은 내내 연합제를 주장하며 북한의 연방제를 반대했고, 북한은 연방제를 고집하며
한국의 연합제에 반대했는데, 둘 다 군통수권은 남북한이 현행대로 따로 보유하자는 것이어서,
둘 다 연합제를 주장하는 것이었고, 다만 주한미군 철수만이 실질적으로 가장 큰 대립이었다.
가장 큰 대립이었던 주한미군 철수가,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이 주한미군 주둔을
양해함으로써, 사실상 남북이 연합제의 핵심적인 내용을 거의 다 동의하였고,
다만 통일조약 체결과 서울에 민족통일기구라는 회담건물 설립만 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