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갑은 만석보가 설치된 곳의 물을 받는 논에 처음 해에는
수세를 물리기 않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약속을 어기고 이를 징수하여 농민들이 격분,
1894년 1월 관아를 습격하고 헐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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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중 일부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4대강 본류보다는 보로 막힌 강물이 지체, 역류해 지천에서 터지는 새로운 홍수 피해로 말미암아 생길 심각한 소요사태의 가능성이다. 지난해 이미 경북 고령과 성주가 이런 원인으로 심각한 홍수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지금은 또 4대강 보 담수 후 4대강 주변 농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4대강 사업 전, 평균 1~2m 정도를 채 유지하지 못했던 강 수위가 사업 후 평균 10m가량으로 올라가자 모래로 축조된 제방 아래로 강물이 제방 바깥 농지의 지하로 침투해 올라가 수박과 참외 하우스 등의 농지에 막대한 침수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지금 “물이 많아 좋은 게 아니라 물이 원수다” “제발 장화 좀 벗고 농사짓고 싶다”고 하소연하며 “만약 대책을 세워주지 않으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부나 수자원공사에서는 재정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멀쩡한 농토에서 농사짓던 농민들이 이제 소송까지 감당해야 할 판이니 이를 어쩔 것인가?
그런데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4대강 주변의 곳곳에서 이런 피해를 호소하는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조광현 이사장은 그의 책 <소통하는 우리역사>에서 갑오농민전쟁의 발단이 고부군수 조병갑이 농민들을 강제 동원해 쌓은 ‘새 만석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존의 보보다도 너무 높게 쌓은 이 보 때문에 강물이 범람하여 상류의 논들에 막대한 홍수 피해를 입혔고, 설상가상 수세까지 받아 챙겨 분노한 농민들이 봉기했다는 증언이다.
만석보, 이름도 재미있는 이 ‘진짜’ 보는 4대강 초대형 보와는 그 형태 면에서는 전혀 다르지만 용도 면에서 보면 참 일맥상통하는 데가 많은 보다. 콘크리트로 완전히 도배한 4대강 초대형 보와 달리 만석보는 나무와 돌로 쌓은 것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욕에 의해 축조되었다는 점은 이명박 정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축조된 4대강 보와 시대를 초월한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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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끝부분처럼 만석보와 사대강을 연결시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지만 기사를 읽던중 흥미가 느껴져 같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