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집에 도착. 허어~ 이제 나도 확실히 더이상은 20대가 아니구나. 발바닥보다 무릎이 더 아프다니. 훗. 하긴 7시간을 서있었으니까. 한심한 놈, 나이를 생각않고.
그래도 그럴 만 했다. 기뻤으니까. 기쁨이라는 진통제/흥분제가 무릎 쑤시는 것도 잊게 해줬으니까.
희망이 보인다, 이 나라, 이 정국에.
나의 자칭 '희망 임계점' 100만명이 모였으니까.
87년 민주항쟁이후 거의 꺼져가던 내 희망/열정을 다시 살려주었으니까.
게다가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지금, 2016년의 100만명 결집은 87년도의 100만과는 또다른 의미, 좀 더 큰 의미가 있으니까(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 1980년대까지는 사람들은 지금의 한국인들보다 훨씬 공동체의식이 더 강하고, 지금의 한국인들은 공동체의식이 많이 줄어들어, 국민은 이제 너무도 '개인화' 심지어 '파편화'되었다고 생각해왔으니까.
왜?
핸드폰 + 스마트폰이라는 '개인별 digital device'때문에. --- 모든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핸폰에 빠져서, 각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심지어 집안에서 부모와 자식들이 같이 앉아있어도, 대화가 사라져가는 사회가 되었기때문에...
지금껏, 군중이 있어도 각자의 핸폰에 고립된 개인/파편적 개인만 있다고 보았는데...
그런데 오늘 나의 이런 관념이 기쁘게도(?) 후련하게(?) 깨졌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80년대와 달리, 2016년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 때와 같은 수, 100만이 모였다고해도, 그 의미는, 그래서, 크게 다른 것이다.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100만명이란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전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은 또, 바꿔 말하면, 아직도, 한국인, 한민족은 그 특유의 '열정'(그리고 '공감'능력)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다행이다.
왜?
민주주의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열정' / '공감능력'이 가장 중요하기때문.
즉, 그 반대의 '무관심/냉혹'은 민주주의를 붕괴시키고 독재가 번식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니까.
한편으로는, 오늘 100만 달성의 또 다른 요인은,
닭+순실 세력이 '금도(禁度)'를 넘었다는 점일 것.
저것들이 '해 쳐 먹어도' 너무 '해 쳐 먹었다'는 것. 어느 정도껏 해 쳐 먹었다면 온 백성이 이리도 동감하게 되진 않았을 터인데.
한심한 것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렸으니...
어찌됐건, 내 경험 상, 100만 명은 '임계점'으로서 작용할 수 있는 수치라고 본다. 그걸 이루어냈으니,
이제 진정한 '동력'이 생긴 것.
아, 하지만, 착각해선 안될 것은, 이것이 이제 진정한 추동력이 된다는 것이지, 이것이 '완결'은 결코 아니라는 것.
이제 로켓에서 최대 추진력이 필요한 제1단계 동력이 갖춰졌다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