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으로 나온 것은 박정희는 1939년 2월 24일에 이미 합격을 했는데
1939년 3월 31일에 혈서를 쓸 이유가 없다고 하며 제시한 근거이다.
이건 채용공고이지 합격공고가 아니다.
나중에 합격공고를 올리겠지만 분명히 채용공고라고 쓰여 있는데도
이걸 합격공고라고 억지를 부르는 것을 이해를 못하겠다.
그럼 한가지 묻고 싶다. 도대체 박정희 이름은 어디에 있냐 말이다.
있을리가 없다. 채용공고인데.
다시 말해 1939년 2월 24일 이 채용공고를 보고 박정희가 지원을 했지만 나이제한에 걸려서
그래서 혈서를 써서 채용시켜달라고 혈서를 써보낸 것이 다음달 29일에 도착했고
이 내용이 이틀뒤인 31일에 기사로 실린 것이다.
그럼 박정희가 정말 합격한 때는 언제인가?
그럼 박정희가 합격한 진짜 날짜는 언제인가...
위 기사는
강덕7년 1940년 1월 4일자 치안부대신 명의의
육군군관학교 제2기 예과생도 채용고시 및 합격자 공고
이것에 따르면
기혼자인 데다가 연령 초과로 입학 자격이 문제되었으나 혈서쓰고
다시 도전하여 결국 1939년 10월 만주 무단장시(牡丹江市)에 소재한
제6군관구 사령부에서 4년제 만주국 초급장교 양성기관인
육군군관학교(신경군관학교) 제2기생 선발 입학시험을 치르고 1940년 1월에 15등으로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