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강 대 강의 충돌, 개성공단이 부러졌다
글쓴이 - 오주르디
개성공단 사태가 폐쇄 국면에 돌입했다. 통일부가 제안한 실무회담 개최 제안에 대해 북한 측이 대화 거부의사를 내비치자 박 대통령이 개성공단의 우리측 체류인원에 대한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회담 제의 진정성? 아니라는 정황들
통일부 회담 제안은 25일 오전에 나왔다. 통일부는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근무자의 인도적 문제 해결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남북 당국한 실무회담 개최를 북한 당국에 공식 제의한다”고 밝히며 “26일 오전까지 회담 제의에 대한 입장을 회신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북이 우리 측이 제의하는 회담마저 거부한다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를 덧붙였다.
정말 회담 제의가 맞는 건가. 통일부의 성명을 ‘대화 제의’로 보기엔 앞뒤 안 맞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5일 오전 대화 제의를 하면서 26일 오전까지 회신해 달라고 못박았다. 양국간 회담 제의를 하면서 회신 시간까지 언급하는 경우는 없다. 더욱이 상대는 북한이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결정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통일부가 모를 턱이 없다.
단 하루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북측이 회담을 거부한다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를 조건으로 달았다. 북한이 통일부의 성명을 회담 제의가 아니라 ‘압박’으로 받아들일 거라는 것을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로 ‘대화와 협상의 기본’을 무시한 일을 벌인 걸까.
대화 거부 유도하기 위한 회담 제의?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북한이 ‘침략전쟁 연습’이라고 규정한 ‘한미 독수리연습’이 이달 말에 끝난다. ‘독수리 연습’이 끝나기 전에는 북한이 절대 회담이나 대화에 응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정부가 몰랐단 말인가. 절대 그럴 리 없다.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을 잘 알면서 내놓은 회담 제의라고 봐야 한다.
명분 싸움이 치열한 상황에서 사전 물밑 접촉도 없이 불쑥 공개적인 회담 제의를 한 것이다. 게다가 회신 기일을 24시간 이내로 못박고, 거부할 경우 이렇게 하겠다는 식의 압박용 조건까지 제시했다. 북측으로부터 대화 거부를 유도해내려는 것이 목적이었단 말인가?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한 이유로 ‘개성공단 잔류인원에 대한 인도적 차원과 자국민 보호와 안전’을 내세웠다. 정부도 “그대로 두면 개성공단이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이런 식으로 나서는 게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기업들의 입장과 생각은 다르다.
“갑작스런 제안 아니라 계획대로 가는 것”, 준비된 시나리오?
입주업체들은 정부의 철수 결정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며 “정부가 북한에게 최후 통첩을 함으로써 상황이 악화된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개성공단 잔류인원들마저 철수하라고 하면 그것은 곧 개성공단 철수를 의미한다”며 “정부가 개성공단 정상화에 우호적 입장이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철수하지 않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한반도 주변국들이 북한과 대화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뜻밖의 ‘강경조치’다. 미중, 한중, 한미의 접촉이 활발한 분위기에서 이런 식의 ‘강수’가 나왔다는 건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과 관련해 일찌감치 모종의 ‘결단’을 내려놓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도 언론과의 대화에서 “갑작스런 제안이 아니고 계획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강 대 강의 충돌이 결국 개성공단 철수로 이어진 것이다. 북한의 군부 강경파들은 개성공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해왔다. 군사 요충지인 개성에 공단이 들어선 것이 걸림돌이 된다는 게 군부 강경파들의 주장이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군부는 최근 조성된 남북 간 긴장관계를 핑계 삼아 개성공단 문을 당장 닫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 군부와 김정은, 체제 안정 위해 개성공단 '강경책'
개성공단을 ‘김정일의 유훈’으로 보고 유화적인 입장을 보여온 북한 노동당도 최근 태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들은 개성공단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군부와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김정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한반도 긴장상황을 고조시키기 위해 개성공단 폐쇄를 주도하고 있다고 본다.
CNN은 김정은이 북한 군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개성공단과 관련된 ‘경제적 실익’보다 대내외 강경책으로 인한 ‘체제 안정’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개성공단을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북한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한 사회에도 개성공단의 문을 영원히 닫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보수우익 단체와 군조직 등은 “개성공단은 시작부터 잘못”이라며 공단이 적지에 조성돼 기업들이 언제 인질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안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애물단지’라고 주장한다.
남한 보수우익, ‘종북색깔 개성공단’ 폐쇄 목소리 높아
개성공단을 ‘DJ 정부’의 ‘퍼주기 정책’의 산물로 인식하는 이들도 많다. 강경 수구세력과 우익단체 뿐 아니라 국방부 등 군의 일부도 개성공단을 폐쇄해 ‘DJ의 종북정책’의 색깔을 빼야 한다고 강변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정부여당 내에도 존재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박 대통령의 발언만 봐도 충분하다. 대화 거부를 유도하기 위한 회담 제의 하루 전인 지난 24일이었다. 박 대통령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오찬에서 개성공단 사태를 거론하며 “무원칙한 퍼주기로 더 큰 위기를 초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철수는 곧 ‘개성공단의 완전 폐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대화의 의지가 있었다면 이번 같이 이런 식의 회담제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정된 수순대로 폐쇄 절차를 밟고 있는 듯하다.
강 대 강 대결, ‘평화의 나무’ 끝내 부러지다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우리 측 피해가 크다. 투자 설비비용 1조원, 입주기업의 직접피해액 6조원에 협력업체들의 간접피해액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강경책을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북한의 김정은과 남한의 정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북한 군부 등 대남 강경파와 남한의 강경보수가 대결국면으로 치달으며 발생한 사태다. 강 대 강의 대결로 ‘개성공단’이라는 ‘평화의 나무’가 끝내 부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