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임 일재 선생.
이제 어쩔 수없이 선생의 이름을 밝히겠습니다.
또 TV 조선 시사토크 판과 중앙일보에 출연해서 당신이 김 일성 승용차를
노획한 영웅이라는 거짓 자랑을 하셨더군요.
모교인 안동 생명 과학고를 방문하셔서 손자같은 어린 후배들에게 했던 거짓말을
또 다시 국민들을 대상으로 되풀이 해서 늘어놓으셨군요.
참 대단하십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씀드리지요.
김 일성의 차를 노획했던 부대는 6사단 7연대 선봉에서 압록강을 향하여 맹진격하던 김 용배 중령의 1대대 휘하 이 대용 대위의 1 중대였습니다.
선생의 부대인 6사단 수색대는 먼 후방에서 사단 본부와 같이
후속하던 부대로서 김일성의 차를 먼저 발견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김일성 차를 노획했다는 선생의 그 무용담은 코미디 수준입니다.
여기 한 번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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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고등학교 재학시 군문에 뛰어들어 학도병으로 종군하여
훈장까지 받으셨습니다.그리고 산림 공무원으로서 평생을 보내면서
경상북도 지역의 산림녹화에 크게 기여하고 서기관으로 은퇴 하신 분입니다.
2000년대 초 월간 조선에 선생이 자청해서 인터뷰했던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박대통령 특명으로 국제선 여객기가 한국에 진입하면서 보이는
포항 지역 산야를 녹화시키는 사업을 갖은 고생을 하면서 성공시켰다고 했었습니다.
왜 그런 애국의 경력을 이렇게 더럽히십니까?
이제 그만 하십시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2년 전 저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앞으로 절대 언론에 나가지도 않고 조용히 살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국민들을 상대로 기만극을 펼치시는 군요.
그 사이의 자기과시 충동을 못 참아서 그런 겁니까?
작년에 흥 가혜라는 좀 뻔뻔한 철부지가 잠수사를 자처하며
거짓 TV회견을 했다가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고 개망신을 당했던
사실을 아시는 지요?
언론들은 이렇게 말 하더군요 .
남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돌출 행동을 서슴치 않는
관심 종자라는 부류가 있는데 이 뻔뻔녀가 그런 타입의 인간일 가능성이 크다고요
선생은 10년 넘게 거짓말을 하고 다녔으니 훨씬 더 심한 관심 종자의
병을 앓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홍가혜라는 여자는 서른도 안 된 어린애지만 선생은 모든 것을 초월해야할 80의 나이입니다.
선생은 김일성 승용차가 경남 사천 우주 항공 박물관에 있을 때 나타나서
자기가 김 일성 승용차를 포획한 사람이라고 자처해서 박물관 관계자들을 모두 속였었고
그래서 안내문에도 선생의 부대인 6사단 수색대가 노획 부대로 기록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 영남 지역에 돌아다니며 김일성 승용차 노획 영웅으로 여러 활동을 했고
경북 도청에서 발간한 학도병에 관한 출판물에도 그런 거짓이 포함되게 만들었더군요.
서울도 올라와서 워커 장군 추모회에도 그런 경력을 내세워 임원자리 하나 꿰 차셨고요.
이제는 김일성 승용차에 노획기에 관한 책까지도 내셨군요.
어쩌면 이렇게 뻔뻔하십니까?
김 일성 승용차가 서울 전쟁 기념관에 올라왔을 때 전쟁 기념관 학예부의 김모 학예사에게 전화질을 해서 그 차는 내가 노획한 것이니 그렇게 안내해달라고 했었지요?
참 대담하십니다.
그러나 김 일성 승용차 도둑질이 서울로도 이어졌던 것은 선생의 큰 실수였죠.
서울에는 그 차를 노획했었던 7연대 1 대대원 다섯 명과 납북되어 가다가 구출 당해서
부대와 압록강으로 진격하면서 김 일성 차량의 행렬을 본 민간인 여고생 한 명이 그 때까지 생존해 있습니다.
60년간 입을 다물고 묵묵히 살던 초산 부대 참전 용사들이 들고 나서서 이번만은 진실을 밝히고
그 명예를 6사단 7연대 후배들에게 찾아주자고 했었지요.
그래서 나를 시켜서 선생에게 대면을 요구하기를 여러 번 했었습니다.
나의 전화를 받은 선생은 자지러지며 대면을 거절하셨지요.
참전 용사들이 대구로 내려가서 대면하겠다는 말에도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며 거절했었지요.
그러신 분이 TV 조선 인터뷰하러 서울까지 어떻게 올라오셨습니까?
방송에 나가서 폼을 잡으며 전쟁 영웅임을 자랑하면서 전쟁 기념관 학예부에서
진짜 노획 용사들과 대질을 요청했을 때도 왜 거절했지요?
그러러면 왜 김 일성 승용차가 서울로 올라올 때 전화질을 했습니까?
선생이 거짓말을 해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철원의 7연대에서 압록강 진격의 날에 참전 용사들이
다 참석한 것을 기회로 전쟁 기념관의 양 창훈 팀장과 전사 편찬 연구소의 남 정옥 박사를 초빙해서
증언을 듣고 진실을 밝히게 했습니다.
증언 청취- 가운데 모자 쓴 분이 최종석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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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쟁기념관 김 일성 승용차 안내문에는 6사단 7연대[초산부대]에서 노획했다고 뚜렷이 써있습니다.
언론에 나오시려면 김 일성 승용차가 경남 사천의 한국 우주 항공 박물관에 있을 때 했을 때처럼
전쟁 기념관에도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담당도 만나 항의하시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 보십시오.
왜 얼씬도 못하는 것입니까?
2013년 10월 9순의 나이와 병자의 몸임에도 그 먼 철원까지 갔었던 최 종석 중령은 증언 후
한 달도 안 되어 돌아 가셨습니다.
그 분의 김 일성 승용차 증언은 7 연대원으로서 생전에 실행했던 마지막 국가 명령의 임무였습니다.
그 분은 선생의 말도 안 되는 김 일성 승용차 노획 주장을 들어보시고 한 마디 하시더군요
“고약한 사람이네. 내 죽어도 철원에서 가서 사실을 알려야겠어.”
그리고 부인의 부축을 받으며 그 먼 길을 가서 증언 하셨습니다.
이런 사연을 들으시고 창피하시지도 않으십니까? 아니 7연대 장병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위의 글이 선생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생각되시면 명예 훼손으로 고소 하십시오.
그 때 7 연대장 고 태남 대령과 정훈과장 이 호웅 대위가 마련한 증언 청취의 장면은
연대의 주도면밀한 준비로 모두 녹화되어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 이것을 경찰과 검찰, 재판부에 제출할테니 법의 판단을 받아 봅시다.
저기 내용이 사실이라면, 6.25참전 학도병 출신에 훈장까지 받고, 산림공무원 생활까지 한 사람인데...
무엇을 얻고자...? ㅋ 씁슬하네요.
흠... 이런 글을 보다보면,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읽게 돼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애국이라든지... 국가의 공신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