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기간 동안 당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유난히 국민행복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3대 핵심과제로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의 확립'을 설정했고, 이 가운데 '경제민주화 실현'을 첫번째 항목으로 내세움으로써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의 실현이 절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선경쟁이 한참이던 작년 10월 경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공약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깜짝 발언을 한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도 없고 관심도 없다"며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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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여야의 핵심쟁점이 되었던 경제민주화, 출처:구글이미지 검색>
당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쓴소리는 이한구 원내대표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 실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기도 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제민주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후보 주변에) 경제민주화 반대 세력이 너무나 많다. 여든 야든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대선용으로) 말로만 하고 제대로 안 하면 1~2년 안에 전직 대통령들(노무현·이명박)과 비슷한 운명으로 갈 것이다"며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과 의지가 결여돼 있음을 정확하게 진단했다. 그리고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몇가지 행보 속에는 김종인 위원장의 경고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 사례1. '사라진 경제민주화 조항'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달 21일 새 정부의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로 정해졌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5대 국정 목표로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맞춤형 고용·복지, △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안전과 통합의 사회,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구축 등을 제시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속에 '경제민주화' 조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국정과제 발표 당시 인수위는 '경제민주화' 조항이 빠진 것이 논란이 되자, '경제민주화는 세부과제 속에 상세히 나와 있다'며 세간의 우려처럼 '후퇴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는 20대 국정전략은 국정목표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다. 대선과정에서 가장 강조했던 '경제민주화 실천' 공약이 국정목표가 아닌 국정전략으로 밀렸다는 것만 보더라도 사실상 이는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경제민주화 실천'을 위한 구체적 내용에서도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및 재벌총수의 국민참여재판 시행을 제외한 것에서 보듯, 처음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경제민주화'의 개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 사례2. 경제민주화를 진두지휘할 경제부총리에 현오석을?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이 결국 무산되었다. 개인적으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라도 그는 새누리당 내에서도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책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의구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성장론자였던 그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개인적 소신을 바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경제민주화와는 동떨어진 태도와 인식으로 일관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경제민주화를 이끌어나갈 책임자로 변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를 위한 최적의 적임자를 찾아야 마땅하다. 경제민주화의 본질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인사를 지식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 임명하겠다는 발상자체가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사례3. 공정거래위원장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은 시장의 독점과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의 근간이라할 수 있는 재벌규제와 재벌개혁을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공정거래위원장에 한만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내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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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를 상대로 기업측 변호 활동한 인사를 공정거래위원장에? 국민일보 사설>
박근혜 대통령이 그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야당과 여론의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도 우려와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지한 것처럼 대기업의 불공정관행을 감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한만수 그가 누구던가? 법률회사인 <김앤장>에 20여 년간 몸담으면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인물이다. 재벌개혁과 규제에 앞장서야 할 기관의 수장을 재벌변호에 앞장서왔던 사람을 임명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이는 불통인사를 넘어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와 다름없다.
■사례4. 박근혜 대통령의 자가당착 인사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가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에서 그 징후가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사례들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자가당착의 모습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밝혔던 약속들을 스스로 뒤집는 언행을 되풀이되면서 대통령을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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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언급했던 대통령의 말바꾸기 리스트에 이제는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추가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책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그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런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사람들이 정책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경제민주화 실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과거전력을 가진 경제부총리와 공정거래위원장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이런 환경 속에서 추진하는 국가정책이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 박근혜 대통령 참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경제민주화 실현'을 천명했지만 사실 대통령이야말로 경제민주화와는 멀어도 한참 먼 삶을 살아온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실현'에 대한 의지를 의심받을 수 밖에 없었고, 이 의구심을 털어내기 위해 김종인 위원장과 한 배를 타야했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조합이었고 당연히 동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잔치는 이내 끝났고 김종인 위원장은 배에서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리를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로 대신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배를 운행해야 할 사람들이 노를 젓는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 상태로 나아간다면 배가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경제민주화'의 과제를 저들과 함께 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거듭 밝히지만 필자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야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진다는데 그 대상이 박근혜면 어떻고, 이명박이면 어떤가?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을 볼 때 필자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필자와 같은 사람, 즉 48%에 속했지만 그래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통령의 거듭되는 자기모순적인 언행들은 성공적인 국정운영의 동력을 스스로 걷어차버리는 일과 같다. 대통령의 요즘 언행속에는 국민행복을 위한 그 어떤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들이 전혀 행복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점을 분명하게 인지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