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엘리트주의입니다.
엘리트주의는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상류층인가 아닌가, 학력이 높은가 낮은가에 따라 나뉘는 게 아닙니다. 타인이나 정보, 자료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아래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생각이며 논의의 범위는 한반도로 제한합니다.
한 때 "개화" 또는 "문명화"라는 사회적 변화의 시기에서 엘리트가 등장합니다. '신문물' '신교육' 세대들은 그 선배 세대와 차별화하려 했으며, 후배 세대들을 "계몽"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 때는 어느 정도 필요하고 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납니다. 실현 불가능한 정치제도인 공산주의-사회주의(트로츠키파든 주체사상파든 상관 없이)를 실험하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고, 그걸 위한 무력투쟁도 있었습니다.
"계몽"이라고 뭉뚱그러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 세부적인 내용은 매우 달라서, 특히 한반도에서는 소련식, 중국식, 미국식, 일본식 등 여러 정치형태들이 실험대 위에 올랐습니다. 그것은 정치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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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다시 엘리트주의가 부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좌우파 모두 경계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OL들은 그걸 오남용하면서 "계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과거처럼 계몽이 필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많은 정보들이 노출되어 있고, 그걸 선택-집중을 통해 판단하는 평가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계몽"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불합리하고 확실한 논거가 없는, 어떨 때는 조작, 왜곡된 자료들이 사용됩니다.
70%의 젊은이들이 대학 과정을 마쳤거나 그 과정 중에 있으며 인터넷 네트워크나 SNS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게 중요한 건 정보 분석, 분류, 적용 기능입니다. 그런데 OL들은 그 권리와 책임을 위탁 받은 것처럼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론지도층들은 물고리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트주의는 국민들을 민주적 태도로 접근하여 정보 분석, 분류, 적용을 나눌 동일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게 합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엘리트주의는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나타납니다. 광우병 사태를 엄청나게 커지게 한 글을 올린 한 아고라 이용자는 중학생으로 밝혀졌습니다.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해, 엘리트주의는 연령, 교육수준, 직업, 경제력, 명예, 사회적 권위 등과 무관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정보들은 조작-왜곡될 수 있고 그것이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계몽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SNS 시대에 모든 네티즌은 OL입니다. 한 명 한 명의 OL들은 각자 서로서로에게 OL이 됩니다. 옛날처럼 소수의 OL과 다수의 팔로워가 있던 시대와는 많이 다르죠.
나와 다른 이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태도를 가진 사람도, 또 태도를 아직 정하지 못한 사람도 나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민주시민입니다.
"저 사람이 뭘 잘못 알고 있구나, 그걸 내가 계몽해서 나와 같은 세력으로 만들어야지." 이런 태도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줘야지 물고기를 무상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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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메시아주의입니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가 생각하는 것은 국가와 세계를 바꿀 수 있고, 사회부조리를 개혁할 수 있어!"
충분히 오만입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단체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주의는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놓고 우상화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가장 좋은 예로 휴전선 건너편 동네를 들 수 있습니다. 메시아주의에 빠진 사람은 어떤 논리적 비판에도 수긍하지 않으며 정보를 조작-왜곡하는 일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또 엘리트주의로 자연스럽게 나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엘리트주의는 메시아주의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을 것 같지만, 메시아주의는 엘리트주의의 필요조건인 "계몽의 목표"를 분명하게 해주며 메시아와 일반 국민들 사이의 중간계층(이념적 귀족)을 필요로 합니다.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그 이념적 귀족 역할을 자청합니다.
많은 SNS 이용자나 인터넷 카페지기, 블로거 등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정보를 분석, 분류, 적용법을 언급하게 됩니다. 자동으로 OL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팔로워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OL들 중 일부는 스스로에게 메시아주의를 덧씌우게 됩니다.
문제가 복잡할 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공화국입니다. 어떤 사람도 차별-역차별 받지 않고 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스스로 엘리트주의나 메시아주의에 경도된 것이 있다면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동료를 최대한 필터를 내려놓고 보시기 바랍니다.
"저 사람도 소중한 사람이며 자기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이 있구나." "나는 저 사람에게 내가 생각하는 '방법론'을 말할 순 있지만 저 사람을 '계몽'할 수는 없구나."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요?
최근에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족 간에 멀어지거나 친구-동료 간에 비상식적인 일도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평상시에는 절대 안 할 만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도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존중입니다.
오래된 생각입니다.
자작 글입니다. 토론, 토의, 지적도 환영하지만 댓글 안 달린다 해도 상관 없습니다.
제 말은 '정답'도 아니고 '계몽 수단'도 아닙니다. 저 개인의 분석, 분류, 적용이며 이건 각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