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 미선 사고 10주기 "이젠 제발 그만 좀 와주세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한적한 2차선 도로를 달라다 보면 한쪽에 자그마한 팻말이 눈에 듼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공원' 이란 안내판 옆으로 '신효순 심미선 추모비' 가 세워져 있다. 2002년 6월 13일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여중생 효순, 미선 양을 기리기 위해 미 2사단이 세운 추모비다. 추모시 마지막에 적힌 '2002년 9월 21일 미 2사단 이동' 이란 문구 중 유독 '미 2사단' 이라는 단어만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사망 10주기를 한 달 앞둔 지난 5월 12일, 기자 외에 다른 추모객은 현장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로 위 사찰을 방문한 신도들의 차량만 종종 오갔다. 자신을 '마을 토박이' 라고 소개한 연화 스님은 "하루 적으면 5대, 많으면 10대 정도의 차량이 추모비를 찾는다" 면서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온 이들도 있고 직접 찾아온 이들도 있는데, 대부분 조용히 둘러보고 돌아간다" 고 설명했다.
"매년 기일마다 오는 단체 추모객들도 조용히 추모하느냐" 고 물었더니 "(오히려)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크게 행사를 벌인다" 며 "절 앞은 물론 길 건너 부대 앞까지 차량과 사람으로 뒤덮여 시끌벅적하다" 고 답했다. 스님은 사찰 주변 상황에 대해선 자세히 설명했지만, 그에 대한 입장이나 판단을 묻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이젠 그저 가족들끼리 조용히 추모하게 내버려뒀으면 해요. 정치도 좋고 이념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기자들이 찾아오고 시끄럽게 떠들면 남은 가족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쉽게 잊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잊을 수 있게 돕는 게 도리 아닐까요? 부모님들이 절에도 자주 오시는 분들이라 남의 일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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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추모비를 뒤로하고 인근 효촌리 마을 어귀로 향했다. 주민 몇 사람에게 집 위치를 물었지만, 모두 대답을 꺼렸다. 스님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장갑차 사고에 대해선 한 목소리로 "매년 기일마다 추모비 주변과 마을입구가 난장판이 된다" 면서 "평소 개인적으로 조용히 오시는 분들이야 그 뜻을 존중하지만, 고인이 된 두 소녀를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사람들의 집회는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고 토로했다. 한 주민의 말이다.
"1년마다 '추모' 란 이름으로 '반미' 와 '반정부' 를 외치는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도로 한쪽을 막고선 마이크 잡고 행사를 하는데, 진짜 추모인지 뭔지 잘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연극을 하는가 하면, 이상한 노래도 부릅니다. 유가족과 마을 주민 대다수가 반기지 않는 행사를 그들이 굳이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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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양의 집에 도착하자 농사일을 끝낸 모자(母子)가 돌아왔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어머니 이옥자(55세)씨는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더니 이내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빠 심규진(28세)씨가 대신 설명했다.
기자: 단순 추모를 넘어 정치집회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심씨: "순수한 추모는 가족 입장에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오셨다 가는 분들이 꽤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단체행동이 시작되면 항상 정치적인 이슈가 섞이니까... (대선이 있는) 올해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인데다 최근 광우병 문제까지 또 터져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네요. 추모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정치색 짙은 반미 집회는 부디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자: 추모비에 '미 2사단' 이라 적힌 부분만 심하게 훼손이 됐던데요. 미군이 추모비를 세운 사실에 대해 누군가 불만이 많았나 봅니다.
심씨: "그거 발견하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추모를 위해 세운 건데, 그렇게까지 훼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매년 미군에서 꽃을 보내주는데, 추모행사가 끝나고 가보면 내동댕이쳐져 있더라고요. 사고 당시엔 저도 미군이 너무 미웠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미선 양의 아버지 심수보(58세)씨는 인터뷰를 요청하니 난감해했다. 꼭 전하고 싶은 말만 짧게 해 달라고 하니 아들과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드릴 말씀이 별로 없습니다. 딸아이에 대한 관심은 감사드리지만, 정치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자제해 주셨으면 해요. 저는 평생 농사만 지어 왔습니다. 정치나 이념에 대해선 잘 몰라요. 이렇게 찾아오시는 것도 편치 않습니다. 가족끼리 조용히 추모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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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 양의 집은 마을 깊숙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아 떠나려고 할 때쯤, 일가족이 탄 차가 마당에 들어섰다. 그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 당황하다가, 기자임을 알고서는 체념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효순 양의 어머니 전명자(50세)씨는 말없이 곧바로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 신현수(58세)씨는 "최근 위암 수술을 해서 몸이 좋지 않다" 면서 "길게 대화할 힘도 없고, 할 말도 별로 없다" 며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잃었는데, 부모 잃은 거와 같겠어요. 이렇게 자꾸 찾아오면 잊으려던 딸아이 생각만 자꾸 납니다. 이제부턴 가족끼리 조용히 추모하고 싶으니, 그만 오시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기자의 맺는말
미군은 추모비를 세우고, 배상금과 성금을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됐다. 10년이 지난 현재, 유가족과 마을 주민 중 누구도 이 사건을 '현재진행형' 이라 말하지 않는다.
국민의 '순수한 분노' 와 달리, 남한 내 '일부 세력' 과 북한은 이를 '반미' 이슈로 확대했다. 이들은 '사고' 를 '살인' 이라 불렀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전면개정과 함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유가족과 마을 주민 대다수는 두 여학생을 가슴에 덮고 있으려고 한다. 모두가 '정치색' 을 띤 시위나 집회로 확산되는 것을 꺼렸다. 그들이 원치 않는 일을 굳이 주도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
-월간조선 2012년 6월호 <효순, 미선 사고 10주기...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의 이구동성>, 196~201쪽
이놈들이랑 나치의 호르스트 베셀이랑 다를게 뭐가 있나 싶다. 한국 좌파(pd계열 말고 nl과 운동권 586)는 진짜 멸종시켜야할 악마이고 똥 덩어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