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당시 일본은 90일 이면 핵개발이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무얼 했을까??
시버스리갈을 마시면서 여자연예인 2백명 항시대기하는 5분대기조를 꾸려가면서
그의 애창곡 동백아가씨(당시금지곡) 을 안부르고 일본군가를 힘차게 불러댔다..
대통령이..........
일본군가를.........
치맛단도 여물지 않은 여대생을 끼고서.......
이 짓을 할때 일본은 백악관에서 머리 조아리며...........플로토늄을 가지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2005년 6월 12일 (일) / 제 98 회
▣ 끝나지 않은 비밀 프로젝트, 일본의 원폭개발
* 일급비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패배 후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일본 군
부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원폭을 개발하기로 하고 이를 동경
대 이화학연구소에 지시한다. 당시 핵물리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
이었던 이화학연구소는 입자가속기와 우라늄 분리통을 도입하여
본격적으로 원폭개발에 나서게 된다.
* 흥남의 비밀 공장, 그 안에서는 무엇이 개발되었나?
1945년 3월 동경 대공습으로 일본 내에서의 개발이 어렵게 되자 일
본은 북한지역에 있는 흥남에서 원폭개발을 계속한다. 당시 흥남
은 질소비료공장, 화학공장등 대단위 공단이 들어선 신흥도시로
원폭개발에 필요한 중수와 전기가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했으며 해
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다.
흥남공단은 평시에는 비료나 화학약품을 만들지만, 전시에는 바
로 군사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것이었다. 흥남에서의 원폭개발 비
밀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 NZ프로젝트 >였다.
< NZ프로젝트 >는 수소화합물을 이용하여 항공기, 잠수함, 인간
어뢰 등의 제트엔진 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V1,
V2라는 장거리미사일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었다.
* 1945년 흥남 앞바다에서 원폭 실험이 있었다?
1947년 연합군사령부 정보 보고서는 놀라운 내용이 들어있다.
1945년 8월 12일 흥남 앞바다에서 섬광과 버섯구름을 동반한 폭발
이 있었으며 천 야드 정도 되는 직경의 불덩이가 하늘로 솟았다는
것이다. 섬광과 버섯구름은 바로 원폭실험의 가장 유력한 징표이
고 다른 무기는 버섯구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보고서는 상당
한 논란을 증폭시켜왔다.
8월 12일은 바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은 직후여서, 일
본이 흥남의 원폭실험 때문에 항복을 늦추고 있었다는 의혹을 낳
았다. 또한 일본은 원폭개발에 성공했다면 인간어뢰, 풍선폭탄, 잠
수함 등에 원폭을 탑재해 가미가제식으로 미국을 공격하려는 계획
을 세웠다. 첫 목표는 하와이였고,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였다.
* 기상천외한 ‘풍선 폭탄’ 공격,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1940년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9.11테러보다 무려 60여 년 전에 벌어진 일이었
다. 뿐만 아니라 ‘맨하탄 프로젝트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고 있던
공장’의 변압기가 풍선 폭탄으로 인해 멈추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
범은 바로 ‘풍선폭탄’이었다.
일본은 Z기류를 이용해 9천 개의 풍선폭탄을 미국을 향해 날렸다.
이중 1천여 개가 미국 본토에 떨어져 미국 본토를 유린했다. 미국
은 이 풍선 폭탄 안에 세균무기가 들어 있을까봐 초긴장상태였다.
풍선폭탄을 요격하기 위해 전선에 나가있던 전투기를 회항시키고
화생방부대를 각 산악지대에 출동시키는 등 법석을 떨었다. 그리
고 이 풍선폭탄의 최종목표는 원폭을 탑재하는 것이었다.
* 잠수함 U-234호, 우라늄 560kg의 정체는?
1945년 5월. 독일 잠수함이 각종 기밀자료를 싣고, 일본으로 향하
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가운데서 독일이 항복하자 대원들은 격
론 끝에 미국에 가서 항복하기로 한다.
한편, 이 배안에는 우라늄 560kg이 들어있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
은 경악했다. 각종 첩보로만 듣고 있던 일본 원폭개발의 실체가 드
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우라늄 발견과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국의 히로시마투하 원폭에 이 우라
늄이 포함된 것은 아닐까?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은 이 사건에 대
해 많은 역사가들은 “일본이 재료(우라늄)를 받으려다 완제품(원
폭)을 받았다”고 평하기도 한다.
* 일본 핵무장의 기초를 닦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야심
원자력 예산 2억3천5백만엔의 비밀
패전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인 1954년 당시 국회의원인 나카소네
의 주도로 일본은 원자력기본법을 통과시킨다. 이로써 2차대전 때
원폭개발의 전력을 지닌 일본은 또 한 번 핵무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당시 원자력기본법안의 예산이 바로 2억3천
5백만 엔이었다. 나카소네는 이는 우라늄 235를 겨냥한 것이었다
고 밝혀 핵무장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 기본법통과로 인해 일본은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발전소
를 비롯 원전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이는 에너지난 해결뿐
만 아니라 군사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나카소
네는 70년 방위청장관 재직 시에도 핵무장에 관한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이때의 실무책임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손자였다.
* 사토 에이사쿠 수상 때 이뤄진 비밀, <핵개발 보고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은 핵무기를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
는 ‘비핵 3원칙’을 발표, 이 공로로 노벨 평화상(1974년)을 수상한
다. 그런데, 사토는 또 다른 한편에선 핵무장가능성을 검토하는 비
밀보고서를 만들게 하여 핵에 관한 일본의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
냈다.
이러한 일본의 이중성은 그 후로도 계속돼 1995년 사회당인 무라
야마 총리 때에도 핵무장을 검토하는 비밀보고서를 만들어냈다.
즉, 핵에 관한 한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비핵3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핵무장을 향한 준비를 끊임없이 준비해온 것이다.
* 일본 고속증식로의 설계자 오마에 겐이치의 충격적 발언
90일내에 핵무기 제조가능하다
1970년 일본 고속증식로를 직접 설계한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의
핵무기제조 기술력에 대해 “일본은 준(準)핵보유국이다. 일본은
90일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놀라운 발언을 했다. 정치지
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과 재처리, 농축시설과 그리고 고속증식로
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공식적인 정상회담 뒤에 벌어지는 비공식 정상회담의 의
제 1순위가 바뀐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재처리와 농축시설 허가
다. 특히 2005년 5월 30일 일본최고재판소에서는 고속증식로 원형
로인 ‘몬주’의 가동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몬주는 사용한 핵
연료보다 많은 핵연료를 다시 만들어내도록 돼 있어 이른바 ‘꿈의
원자로’로 불린다. 그런데, 이러한 고속증식로의 문제는 무기급 플
루토늄의 생산 역시 가능해 진다는데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원폭개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