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노무현의 대표적 캐치프레이즈는 "특권과 반칙없는 사회, 노무현이 만들겠습니다"였다. 그 구호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좌파고 우파고는 그 다음 문제다. 공정성-평등성이 아니라-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그러므로 우파임이 분명한 내가 흔히 좌파로 불리는 이들을 지지해온 이유는 현재의 우파는 공정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거니와 사적 이익을 위해 틈만나면 이를 해치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현재 우리사회 갈등의 양상을 '상식과 비상식의 충돌'로 규정했다. 100%동의한다. 그래서 비록 문재인을 가장 선호하긴 하지만 안철수 역시 호감이 가는 후보이며 상황-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되거나, 안철수에 표를 몰아주지 않으면 박근혜가 당선될 것으로 보이거나-에 따라서 기꺼이 표를 던질 용의도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용의가 있으나 그것은 차후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진지한 반성과 사과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세든 병역이든, 나는 의무를 져버리는 이들이 끔찍하게 싫다(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체육대회의 성적에 따라 병역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조차 싫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의무란 회피할 능력이 없는 이들만 부담하는 형벌같아 보인다. 안철수에게 호감을 가진 이유중의 하나가 얼마든지 의무를 회피할 능력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의무를 이행해 온, 그리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이들을 나만큼이나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탈세에 대해 안철수가 가차없는 처벌을 천명한 것은 의미만 놓고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당한 주장이지만 이제 문제가 생겼다. 예컨데 "국민 모두가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문장은 누가봐도 지당한 말씀이지만 그걸 수천억의 증여세를 편법으로 회피한 대기업의 회장님이 말씀하시면 기도 안차는 코미디가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옳은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격'이 문제가 된다.
당시의 관행이었든 뭐든 그건 쉴드가 될 수 없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항변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공직의 정점 대통령에 임명되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됐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잘못된 일이고 사과드린다"는 표현은 다행이다, 당시 상황이 어쨋다는 둥 변명하려 하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나는 여전히 안철수를 좋아한다. 언행을 일치시키는 것이나 자격이 되는 한으로 스스로 발언을 제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아는 탓이다. 다만 오는 12월에 내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차선의 후보에게 표를 줘야하는 상황이 왔을때,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찍을 수 있는 후보로 남아줬으면 한다. 박근혜라는 인명과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명을 주욱 이어서 발음하는 것은 내겐 너무 그로테스크하고 창피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