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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임종석씨 학교 후배입니다.
임종석씨가 3기 의장이고, 저는 5기 김종식 의장일때 학창생활을 했지요...
주사파? 있습니다. 김일성 찬양?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5공부활을 저지하는 것이 목표였고, 저또한 그 목표를 위해서 거리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좌익운동권이라고 프레임을 씌우면서 탄압한 것은 4.19로부터 5.18, 6월항쟁 등 주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정권을 압박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군부독재세력의 프레임입니다.
이후 김영삼 민주정권(?) 수립 후 전대협의 강경노선이 더이상 필요없어지면서
한총련으로 개칭하고 다시 대학생 연합의 명맥을 이어갑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이런 다짐을하면서 많은 학생들이 군부독재에 맞서서 싸우다 사라져 갔습니다.
아주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임종석이 임수경을 북한축전에 보내고, 이후 임수경씨가 판문점을 걸어나오기 전,
임수경씨는 북한의 폐쇄성에 대하여 비판을 서슴없이 했다고 합니다.
군부독재의 응어리를 풀 수 있었던 학생운동의 구심점들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도 주사파를 신봉한다면 바로 신고해 보세요...
그리고, 저때 법원은 아직 군부독재시대의 법원입니다.
인혁당 사건과 별반 다를게 없는 사항입니다.
얼마나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쿠데타와 폭압과 부정부패가 심하고 국민들의 생활고가 힘들었음 한때지만, 북한을 차라리 더 살기좋을거 같다 혹은 사회주의정부가 더 나을거 같단 이념적 착각을 했을지 이해가되고도 남죠. 당시 대학생으로 그나마 지적으로 깨어있었던 사람이라면 당연한 얘길겁니다.
또 80년대 이전만해도 우리와 북한은 경제력이나 생활수준이 비등했고 오히려 북이 더 나았다고 평가됩니다.
사실 이승만 초대정부때 미국으로부터 도입한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무늬만 민주주의지 실상은 이승만부터 전두환정권 말인 1987년까지, 1960년 4.19이후 내각제가 도입된 약 1년간을 제외하곤, 근 38년간 실패한 공산당 일당 독재정권체제였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었죠.
그러니 90년 이전 학생운동하던 세력들인 nl, pd, 주사파 전대협출신 등 그누구라도 공산당보다 더한 인권탄압 독재정권을 맞서 대항할 힘이없는 학생들은 차라리 북한정권을 편으로 끌어들려 맞서려했던것이었지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죠.
이후 이미 우리힘으로 정치민주화를 이뤘고 현재는 7,80년대 당시 남한 권위주의 군부독재정권 보다 더한 북한 독재정권을 보면서 같은 독재의 한계를 남북 공히 더욱 깨닫는 사람이된것으로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봅니다.
그러니 당시와 현재상황의 차이를 고려하지않고 억지로 끼워맞추기식 종북 프레임은 아주 극도로 치밀하게 준비된 수구세력들의 공작이라고봅니다.
맞습니다.
주사파라고 프레임씌워서 많은 학생을 옥고를 치르게 한 인물이 하나 있었지요...
서강대 총장이었던 박홍신부...
전 그인간이 정말 쓰레기같은 인간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신부라서 주사파 학생으로 부터 상담을 받았는데(전 천주교가 아니라 용어를 모릅니다) 원래 신부로서 비밀을 지켜야 하나 주사파가 너무 심각해서 폭로한다며
TV에 나와 운동권 출신들을 전부 주사파로 매도했었지요...
그 이후에도 한참을 울궈먹고 시청앞 보수집회에까지 나와서 주사파 운운하면서 김동길과 함께 몰려다니며 선동질 하고 다니곤 했습니다.
저도 주사파였습니다.(술먹고 죽자파).
농담으로 항상 이렇게 이야기 하곤했습니다.
이젠 이런 프레임이 없어져야 하는데, 종북이라는 프레임으로 변질되어 다시 고개를 들더니만, 다시 주사파를 또 들고 나오네요...한심한...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