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제민주화(라고 쓰고 재벌 공격)의 핵심은 금산분리 강화와 재벌해체인 듯 합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저는 금산분리정책에는 찬성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여 재벌을 해체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금산분리는 장차 한국이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죠. 하지만 재벌 해체는 단지 대기업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일명 "서민"들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하는 포퓰리즘적인 측면이 더욱 강해보입니다. 일단 금산분리부터 그 이유를 적고, 재벌해체에 관한 의견은 나중에 적겠습니다.
금산분리라는 개념은 일본 및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고, 미국에는 존재하죠. 일본 및 유럽에서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는 데에 관해서 제약이 없고, 미국에서는 산업자본의 의결권을 15%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산분리는 미국의 제도를 본딴 것으로 현행 기업이 금융자본에 행할 수 있는 최대 의결권은 우리나라에서 9%입니다. 이걸 현재 4%로 낮추겠다고 한 후보가 한명 있고, 다른 후보들도 금산분리 강화 정책에는 긍정적인 듯 싶습니다.
금산분리에 찬성 및 반대하기 이전에 금산분리가 왜 행해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산분리에 반대하는 이유는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사금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사유화가 왜 나쁜 일인가? 이것은 단순히 그것이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윤리적인 이유를 넘어섭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사유화는 거품을 키우는 원인이 됩니다. 산업자본은 그 수명이 짧죠. 오늘의 최신폰은 몇개월 후에는 더이상 최신폰이 아니죠. 냉장고도 계속해서 신제품이 나오고, 자동차도 계속해서 신차가 나오죠. 산업자본은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벌어야 합니다. 하나의 제품을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팔아치우고, 그 수익으로 다음 제품을 개발하고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사원들에게 임금을 줘야하죠. 반면에 금융자본은 수명이 깁니다. 오늘의 예금이 혹은 오늘의 대출이 갑자기 몇달 후에 다른 상품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상품의 이율 등 수치에는 변화가 있을지라도 그 상품의 본질이 변화하지는 않죠. 물론 금융상품도 정적이지는 않아서 계속해서 새로운 상품들이 개발되기는 하나(예를 들자면 한국 부동산거품의 원인인 PF라던가, 아니면 CDS, 자산유동화증권 등 파생상품들) 그 수명이 산업상품에 비해서 매우 길죠. 따라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처럼 단기간에 많이 팔아먹어야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꾸준한 실적을 내야 살아남게 됩니다.
금융자본의 성격이 산업자본의 성격과 다르다는 것의 의미는, 금융자본을 운용하는 사람은 산업자본을 운용하는 사람의 마인드를 가지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금융자본은 호황기에 산업자본이 당장 자신의 산업제품을 많이 팔고 싶어서 금융자본에 대출을 요구한다면, 금융자본은 과열로 인한 미래의 부실을 염두에 두고 과열 조정에 들어가야 하고, 불황기에 산업자본이 돈에 목이 말라 돈을 갈구할 때, 금융자본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높아진 이율로(혹은 절대이율이 오르지 않더라도 한은이 금리를 불황기에 낮추기 때문에 높아진 마진율로) 산업자본에 대출을 해 주어 산업자본의 도산을 막고 이윤을 극대화 해야 합니다.
만일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호황거품기에 은행이 기업에 저금리로 대량대출을 해 주고, 대출 마진이 많이 남을 불황기에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 줄 여력을 커녕 과거 호황기 거품대출 부실로 인해 도산을 맞게 되는 운명이 됩니다. 일례로 80년도말 부동산 거품기에 일본에서 부동산을 산다고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노숙자라도 5분내로 대출이 나오고 심지어 부동산 시가의 120%까지 대출을 해주는 은행이 있었을 정도로 호황기 대출경쟁을 일으켰던 은행들은 거품이 꺼지자마자 가장 먼저 썰려나갔죠.
영국처럼 강력한 산업자본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별 상관이 없겠지만,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산업자본이 존재하는 국가가 은행경영에서 산업자본적 마인드를 배제하려면, 산업자본의 의결권을 가능한 한 제한하는 금산분리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금산분리 강화는 지금 당장 필요하죠. 그 이유는 한국의 금융산업은 아직 미국이나 영국처럼 발전하지 않아서 지금 강력한 금산분리제를 도입해 놓으면 저항도 미래에 금산분리를 행하는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가정용 전력을 과거 110v에서 220v로 제때 변환을 해서 저렴하게 했지만, 일본은 220v를 부러워 하면서도 현행 110v에서 220v로 변환하려 하면 국가예산 이상의 비용이 예상되기에 손도 못대고 있는 것이랑 마찬가지죠.
재벌해체가 왜 단순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나중에 적겠습니다. 붙여서 적자니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고, 손가락도 조금 아프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