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ID와 북한인권법과 납치문제는 비핵화, 북인권, 납치라는 '리얼리티'에 대한 '기호'의 예시들입니다. 기호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사고, 희망, 욕구 등이 투영된 독자적인 '세계', 즉 리얼리티라는 하나의 세계와는 별개인 '또 하나의 세계'입니다.
CVID(기호)=비핵화 해결(리얼리티)
북한인권법(기호)=인권문제 개선(리얼리티)
납치문제(기호)=납치 해결(리얼리티)
이것들은 항등항들이 아닙니다. 등식관계가 성립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개별적, 독자적 항들입니다.
기호는 존재하기 시작하면 리얼리티를 넘어서 독자적인 함의를 지니기 시작합니다.
CVID는 비핵화 자체를 넘어서 비핵화에 대한 기만의도 없는 북한의 진정성,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단호한 의지를 투영하는 기호가 됩니다.
북한인권법은 북 인권의 해결을 넘어서 북한에 대한 태도를 입증하는 수단, 종북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른바 '매카시즘'적인 도구가 됩니다. ('자유민주주의' 용어 논란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납치문제는 '납치 자체'를 넘어 이른바 '반일'이라는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즉 일본의 반일 컴플렉스, 애국주의가 투영된 기호가 됩니다.
"북미 합의문에서 CVID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미국이 패배했다, 비핵화에 암운이 드리웠다." 등등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만약 우리가 시간이 지나 진정한 북한의 비핵화를 보게된다면 CVID없이도 비핵화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북한 인권법 제정 없이도 북이 개방되고 보통국가화되고 인권이 점차 개선된다면 인권법 없이도 인권문제는 개선된 것이며 "납치문제 해결없이 국교정상화는 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북일국교정상화를 우선하고 신뢰관계가 쌓인 뒤 납치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이른바 '납치문제' 없이도 납치는 해결된 것입니다. (한국의 납북자 문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말해 반드시 '기호=리얼리티'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기호가 리얼리티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면서 기호는 독자적 생명력을 지니게 됩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프레임'이란 용어는 사실 기호학과 밀접히 연관된 용어입니다. CVID, 인권법, 납치문제는 비핵화의 진정성, 종북좌빨, 애국주의의 또다른 이름이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비핵화를 원하지 않는 자들로, 종북좌빨로, 반일세력으로 걸러내는 '체' 혹은 '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게되면 심각히 고려해야 할 문제가 하나 제기됩니다. 그것은 '기호가 리얼리티를 잡아먹는다.'의 문제입니다. CVID에 매몰돼 비핵화 협상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 인권법이나 납치문제에 매몰돼 관계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따라서 리얼리티를 해결할 절호의 기호를 놓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물론 CVID, 인권법, 납치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반드시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즉 기호가 리얼리티를 삼켜버리게 되는 비극적 결과이고 기호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스스로 배반한 '자기 배반'이며 애초 자신을 탄생시킨 리얼리티를 배반한 '창조주에 대한 배반'입니다. (왠지 기독교 신학 삘이 나지 않나요? ㅎㅎ)
자기 생명력을 가지기 시작한 기호가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리얼리티를 배반해 버릴 때 이제 기호는 리얼리티를 위한 기호가 아닌 '기호 자체를 위한 기호' 따라서 '텅 빈 기호'가 되어버리게 됩니다.
기호에 매몰되어 리얼리티를 배반하는 비실용주의, 비현실주의의 우를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비단 정치 현상의 문제만이 아니고 각 개인의 일상 생활의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는 태도이며 문제와 문제해결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 사고와 태도의 유연성 등과 관계된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