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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접은 게 아니라 침략이나 식민지화를 좋게 보지는 않기에
다만 그런 제국주의 시류를 막을려면 저 수 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고...
역량이 따르지 못했을 뿐 충분히 그럴 생각이 있는 비대한 곳 몇 군데를 조각내주고(옆동네? ㅋㅋ)
유럽 쪽 가서 그런 짓 못하게 식겁 한번 시켜줘서 북미는 인디언 세상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대륙들도 지들끼리야 지지고 볶든 말든 좀 정상화를... ㅎㅎ
(아랫 동네는 음..... 동물의 낙원으로 만들어야하나)
딱 시대(역사)적인 기억(과학 등의 주변 지식 제외)만 가져가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절대 권력만 주어진다면 그리 할 게 많지는 않죠.
국가 구조나 사회 개혁은 당연하겠지만(당연히 생각하겠지만)
툭 떨어질 당시 상황만이 주어진다면 이후에 그 힘을 유지할런지 내 수명이나 건강이 어찌될지부터 걱정해야 할 것이고...
주변 정세는 아는 입장에서 선제적, 그리고 유리하다 생각하는 대응이야 가능할 것인데 어떤 변수가 만들어질지 역시 알 길 없고. ㅎㅎ
1차 대전 이전에 아니 보불전쟁 전에 이미 프랑스의 국력을 훨씬 뛰어넘었고 그거에 식민지 개척 경제블럭 이런건 상관없어 보이고
내가 생각할때는 산업화인데 석탄이랑 철은 있는데 글쎄
그시대로 넘어가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반정나 죽기 딱이지 않을까
일본 당했던것처럼 흑선끌고와서 종묘에 대포를 쏘면 어떨까
좀 더 이른 시기에 자국 안정이 가능했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지혜가 있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봅니다. 파동에 휘둘리지 않을 방법은 모호하나 주권을 지키는 것 정도는...
다만 어느 정도 절대적 권력이 주어져도 18세기 후반으로는 좀 늦어 어렵지 않겠나 싶네요, 그 권력이 향후(집권 시기 내내 + 사후)에도 쭉 절대적이라는 담보가 있으면 조금 다를 수 있겠으나.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당시 지배세력의 보수적인 의식의 저항을 돌파할 재간이 없을것
같네요~ 수세기동안 이어져 온 문화적 우월감과 과거에 기반한 자신감(?)에 넘쳐있는 그들이였기에,
게다가 우리 민족적 특성이 저항에 강해서, 일본처럼 상하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한 자극과, 강제적힘에 굴복해 버렸던거 같아요~
지금시대 어느 누가 가도 조선의 운명을 바꾸긴 힘들 거 같네요~
독일 통일 이전에 이미 그 지역 공국들은 상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었음 프로이센이나 바이마르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자원 노동력 같은걸 말했는데 과연 그 자원이 주권이나 국력을 지키는데 얼마나 필요할 것인가 인도의 목화 향신료 아프리카의 상아 노예 신대륙의 담배 따위가 과연 필수적이었을까 글쎄
물론 해상교역이 막히면 상당한 애로가 있을 수
있지만 대전기때 칠레의 질산염이나 동남아의
고무등 필수적인 자원을 기술의 발전으로 돌파하기도 했고
독일의 국력 엄밀히 말해 독일통일 이전에 발달한 그 지역의 선철 석탄생산량이나 화학기술의
발달이라던가 -비료나 염색공업 같은 소소한 듯
보이지만 큰 영향을 미친 발명들- 나폴레옹 이후 우월한 인구와 입지를 가지고도 산업화에 실패하여 열강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러시아와 비교하여 철도화나 도시화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도 생각해 볼 수 있겠고
그런 지식습득과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 종교개혁과 관용의 분위기 철학의 발달과 조선을 정치 문화 지식적으로 옭아매던 병자호란 이후의 교조주의적 성리학부터 올라갈 수도 있겠고
17-8세기.. 정확히는 영정조 시기에 조선은 서양 문물과 학문이 급격히 유입되던 시기입니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흔들리게 된 시기죠.. 이에 맞서 조선 조정은 삼강오륜행실도를 재간행하고..
문체반정을 실시하며 이른바 예치로 맞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이라는 탈레반스러운 모습은
17-8세기 예치의 결과물이죠. 이미 17-8세기에 자유문학과 학풍이 유행하였고, 과부집..목로주점이 생겨
났으며, 자본가로 볼 수 있는 거대 상업집단이 생겨났죠. 1801년에는 공노비가 혁파되었고요..
만약이라는 가정을 달면.. 예치를 포기하고 문체반정도 포기하고 대륙에서 밀려드는 서양풍을
그대로 흡수하면 됐습니다. 그냥 뒀으면 당대에는 서양식 시계와 세계전도 병풍이 초유행이었던 것만큼..
지식인들은 신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죠...
조정은 적극적인 조세 개편을 통해 양반과 천민을 조세 울타리로 묶어놨어야 했고..
잉여세수로 군제를 개편해야 했죠.. 늘어난 직업군인들을 바탕으로 서양세력과의 교역을 확대해야 했죠..
성리학을 공고히 하려는 예치를 내세우지 않고 조세개편만 했어도 조선을 건드릴 수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