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8년 어느날.
학도호국단에서 전교생에게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다.
운동장에 나가니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미국 CIA의 청와대 도청을 규탄하는 선언문을 낭독한 뒤
전교생을 몰고 교문 밖으로 나가 미국 규탄 시위를 했다.
실은 하는 척했고 경찰 몇 명이 막는 척했다.
아마도 중앙정보부나 보안사에서 배후 조종했던 관제 시위였을 거다.
박정희 덕분에 미국이 대한민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주권을 침해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대미 관계가 순조롭지 않았다.
미국은 미군 빼내겠다는 얘기를 했고
박정희는 미군 빼내가도 괜찮다고 얘기했다.
박정희는 미사일 개발에 나섰고,
요즘 북한이 하는 짓처럼 박정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그러다가 1979년 10월 26일 예비고사를 치르기 10일을 앞두고 박정희가 총 맞아 죽었다.
그날 아침 7시 긴급 뉴스에 박정희가 유고이고 계엄령을 내렸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 입학하니
같은 하숙집 정부종합청사에 출근하던 한 공무원이
박정희가 죽은 것은 핵무기 개발하려 했기 때문이고
김재규 배후에는 미국 CIA가 있다고 얘기하더라.
확인된 바는 없지만 김재규가 박정희 제거를 결심한 것에는
당시 미국 CIA의 동향을 잘 알았던 까닭이 있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