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회원에 대한 반말,욕설 글(운영원칙 2,3항) 3회 위반시 접근 차단 조치 됩니다.(원인제공과 관계없이 조치)
하오니, 절대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거법 위반 및 정치관계법 위반행위 신고는 아래 중앙선거관리 위원회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선거관리 위원회 http://www.nec.go.kr
“5월19일 오후 우리 부대가 벌이는 폭력을 광주시민들이 다 지켜보고 경악했다. 앞이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이들이 길을 지나가다 군인들 곤봉에 맞았다. 저녁이 되자 시민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 부대는 전남도청으로 들어가 자정이던 통금시간을 밤 9시로 당겼다.”
밤 9시로 갑자기 당겨진 통금시간을 넘겨 귀가를 서두르던 젊은 여성들이 특전사의 표적이 되었다. "도서관과 학원에서 뒤늦게 귀가하는 여학생들이 성폭행 대상이었을 것이다. 5·18 기간 광주에서 일어난 성폭행의 상당수는 5월19일 밤에 발생했을 것이다."
이경남 일병은 부대 동료들의 만행에 충격을 받았다. 목회자를 지망하던 신학대학생이던 그는 동료들의 난폭함과 잔인성에 무기력했다. 잠 한숨 못 자고 내려와 눈이 벌게진 상태에서 곧장 시위 진압에 투입돼, 정신교육을 받은 대로 시민을 ‘적’ 또는 ‘빨갱이’로 간주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동료들을 대놓고 막을 수도 없었다. “우리 중대원 중 대학을 다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대부분 ‘민주화’ ‘유신헌법’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특전사 군인과 시위하는 학생은 동년배였지만 그들 사이 박탈감과 반감이 컸다. 전두환이 그걸 이용했다.”
당시 신군부는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면 부마 항쟁처럼 조용해질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백주 대낮에 만행을 지켜본 시민들은 뭉치기 시작했다. “진압작전 때 진압봉으로 때리고 군홧발로 짓이겼다. 시민들이 지나가다가 혹시 당신들 공산군 아니냐고, 국군이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묻더라.”
5월21일 이경남 일병은 오전 10시부터 도청 앞 전일빌딩 입구에서 시위대와 대치했다. 전날까지 공수부대의 진압으로 시민 9명이 죽었다. 분노한 차량 시위대는 총공세를 벌였다. 11공수여단이 도청 앞에서 장갑차 2대를 선두에 배치해두고 버티던 중 협상이 결렬되자 낮 12시 넘어서 시위대 차량 돌진이 시작됐다. 돌진하던 차량에서는 화염병을 투척했다. 당황한 군 장갑차가 갑자기 후진 퇴각하다가 권○○ 일병이 깔려 숨졌다. “저지선이 무너지고, 군인은 도망가고, 장갑차가 퇴각하니 금남로가 비었다. 시위대 측에서 차량 공격을 시작하자 그때 실탄을 지급받은 지휘관들과 저격수들이 발포를 했다. 이것이 도청 앞 발포 사건이다.”
발포 당시 이경남 일병은 도청 지하실에 있었다. 권 일병이 눈앞에서 부대 장갑차에 깔려 죽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 그를 하사관들이 도청 지하실로 데려갔다. 시위대를 향한 발포는 전일빌딩과 도청 앞 수협 옥상에 배치한 저격수들을 통해 시작됐다. 발포가 끝나고 63대대 한 하사관이 이경남 일병에게 자랑스레 말했다. “내가 장갑차에 깔려죽은 권 일병의 원수를 갚느라고 조준사격해서 쏘았다.”
도청 앞 집단 발포로 유혈 참극이 확대되자 시민들도 무장했다. 집단 발포 부대인 11공수여단은 도청을 버리고 오후 4시 조선대로 철수한 뒤 무등산 자락에 있는 주남마을로 주둔지를 옮겼다. 주남마을 뒷산에서는 땅을 파고 매복했다. 공수대원들에게 실탄·수류탄·가스탄 등이 지급됐다. 일부 부대원은 시위 현장에서 끌고 온 대학생을 총살한 뒤 암매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