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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적은 하얼빈 역에 가면 안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자리에 표기가 되어 있어요. 안의사는 비록 복벽주의자이시긴 하셨지만, 그 대의는 분명 우리민족의 독립과 번영에 직결되어 지금의 민족정신의 근간에 통하고 있다고 봐야죠. 안의사가 하얼빈까지 오시기 전에 활동하셨던 러시아 클라스키노에 가시면 안의사 포함 11명의 독립투사들의 단지동맹비가 있습니다. 안의사 손이 깨나 크시드라구요. 클라스키노에서 핫산으로 해서 중국 훈춘으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집안시에 가시면 유리왕 이후 장수왕 이전때까지의 무덤군이 있어요. 광개토왕릉과 장수왕릉(이견도 있지만)도 있어요. 집안시 압록강 넘어로 만포시가 보입니다. 고구려사는 중국의 일반 사학자들이나 한족들도 모두 한민족의 역사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중국정부의 소수민족 공종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동북공정을 통해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것도 잘알구요.
ㄴ 이분은 진짜 역사관이 심하게 왜곡되있네...이러니 정치관도 그모양이지...
조선족은 청 봉금 이후 함경도 일대에서 넘어간 우리 선조와 구한말 일제의 억압때문에 고향을 눈물로 등진 우리 선조들의 자손이예요. 다 같은 한민족이예요. 지역적 구분을 위하여 조선족 고려인 제일동포 등등으로 구분을 할 수는 있지만 민족적 분류를 위행 한민족과 조선적으로 구분하진 않아요. 님의 우문에 억지로 답을 드린다면, 안의사는 조선족 고려인 재일동포 등등 사해만방에서 살고 있는 우리 한민족의 자랑이얘요.
윤동주 선생의 선대는 함경도 분들이죠.
구한말 선대들이 연변 화룡현으로 이주 후 명동촌을 일구시고
윤동주 선생은 명동촌을 고향으로 하여 명동중학교(지금은 대성중학교)를 나오셨죠.
지금도 윤동주 선생의 생가에 가보시면, 집안 내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윤선생의 친척 조카뻘 되시는 분이 관리를 하고 계시는데
지난 달 갔을 때는 윤동주기념관가 작은 카페도 만들었드만요.
한번 가보세요. 일년만에 깨끗하게 새 단장을 했드라구요.
특히, 카페와 기념관 사이 작은 오솔길에 세워져 있는 [해바라기 얼굴]을 읽어보세요.
어린 윤동주 선생의 맑디 맑은 감수성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10분 거리의 진달래라는 식당에서 이북식 된장찌게를 드셔보세요. 우리민족의 질기지 질긴 냄새를 맡아 볼수 있어요.
그리고 다시 30분 거리의 일송정을 올라가시면 굽이치는 혜란강과 멀리 연변시가 내려다 보일거예요.
일송정의 소나무는 몇년전 죽어서 지금은 작은 소나무로 개식했어요.
그래도 시간이 되시면 도문으로 가셔서 두만강가를 따라 오른편으로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북한 땅도 보시고,
도문세관도 보시고 훈춘에서는 훈춘쌀밥에 두부탕 드셔보시고...바천으로 가셔서 용호탑에 오르셔서 두만강 늪지에 펼쳐진 북중러 삼국 국경도 보신 후, 연변 공항에서 인천으로 2시간 걸려 돌아오시면 됩니다.
이상 주저리 주저리...
이번 주말에 갑니다. 채비 끝내고 이렇게 노닥 노닥...
ㄴ 연변은 조선족 자치구의 가장 큰 도시예요.
중국정부 법에 따라 자치구 지위를 유지하려면 300만이 넘어야 해요.
하지만 연변내 조선족은 상당수가 한국이나 중국내 대도시로 많이가서 300만에는 턱도 없이 모자랍니다. 연변시 자체만 80만정도 등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40만 남짓 추정합니다.
그런데 연변 조선족 자치 정부에서 지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정부에 조선족 인구를 계속 300만으로 올리고 있는 형편이죠.
자치구가 되면 모든 공식 문자를 한글과 중국어 병기를 하고 민족교육에 대한 권한을 얻을 수 있는 등 여러모로 민족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용이해지거든요...
님의 역사지식이 좀...
항일투사들 중에 중국에 편입되기 위해 항일을 한 사람은 한분도 없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1920년대 이후 항일투쟁은 임시정부 중심의 독립(후 공화국 수립) 목적-쉽게 민족주의라고 하죠, 세계사회주의 혁명 목적의 크게 2주류가 있었고
님이 잘 못알고 계시는 부분은 아마 세계사회주의혁명계열의 항일을 중국편입목적으로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특히 무장항일조직내 민족계열과 사회주의계열간의 반목으로 분열도 좀 있었으나 자유시참변 이후 정의부 참의부 신민부를 중심으로 하여 직간접적으로 임시정부와 연계되어 민족계열 중심의 무장항일이 간도지역에서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체코군단의 동방우회때 신식 무기체계를 도입하여 일본정규군과 국지전을 치를 수 있는 전력까지 도달하기도 합니다.
사회주의혁명 계열은 중국 공산화에 참여하여 대장정까지 중공과 함께하며 중국공산혁명에 기여 후, 해방 후 북한의 군조직 근간으로 편입되거나 한국전쟁시 북한편에서 중공군으로 참전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