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 시절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1980년대의 한국사학자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우리 역사에 대한 독창적 시각에 놀랐고
이 책이 1930년대 려순감옥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습니다.
지금도 교도소 수감자가 책을 집필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는데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시절 책을 집필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방대한 사료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책인데
사료를 참고할 수 없는 감옥에서 저술된 책이라고 믿기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지식과 학문의 역사에서 거인의 시대는 갔고 나는 난쟁이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지요.
요즘 이른바 명문대 교수와 학생들의 행태를 보면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보다 더 난쟁이가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교수들이 쓰는 논문도 많아졌고 대학생들의 지식 양도 늘었겠지만
시대 정신에 대한 투철한 고민이 없고
따라서 문제 의식도 부족하니
지적 스케일과 창조성이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넉넉하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교수 지위 지키고, 대학 졸업 후 성공과 출세의 길만 찾는 자들만 가득하니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게 된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