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노동지청에 사업장 고용보험 문제 때문에 잠시 들리게 되었습니다.
좁아 터진 주차장 때문에 주차하는데 10분 정도 걸리는 바람에 짜증이 날
대로 나버린 상태로 1층 로비에 들어가니 왠 외국인 노동자가 층별 안내
판을 보고 있었습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머리는 며칠은 족히 안 감은 것
같고 왜소한 체격에 엉덩이에 반쯤 흘러내린 바지를 입고 까무잡잡한 얼굴
엔 콧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도 해당 부서가 어디인지 확인하려고 안내판을 향해 걸어가는데 그 친구
가 저에게 넙죽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의 알아
듣지도 못할 이상한 한국말을 들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안내판을 보니
3층에 외국인 지원 부서가 표기 되어 있기에 3층으로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3층을 가리키며 이리로 가라고 말해도 이 친구가 뭐라고 계속 말하려는
겁니다. 그래서 속으로 점점 귀찮아 지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이 친구의 반복되는
문장이 어렴풋이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제 패스포트, 라이센스, 열시미 일에서요, 열시미 일에서요, 라이센스.."
이럴수가!!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정식 여권과 노동 허가증.... 일하는 곳은 농공단지...
행색이 너무 더러워서 제가 지나가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공무원들을 붙
들고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아무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던 이 동남아(방글라) 노동
자는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내가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으로 부푼 꿈을 안고 가족
들 모두의 희망을 안고 와서 열심히 일했지만 돼먹지 않은 사장놈에게 임금을 떼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내판에 있는 한글 단어들을 하나씩 영어 단어로 해석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엘레베이터로 3층 까지 함께 가서 그 친구를 내리게 하고 전 5층에 가서 업무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이 나길래 3층으로 내려가서 제대로 찾아 갔는지 확인하러 갔었
는데 담당 공무원에게 가서 상담을 받고 있더군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뭐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는 제가 영어 잘한다며 감탄했지만 저는 마음 속이 너무 착잡
했습니다. 봐서는 안될 것을 봐버린 듯한 기분이랄까...
저는 다문화반대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정의롭기도 바랍니다. 어떤 이가
적법한 노동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정의의 시작
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짓밟는 것은 내국인, 외국인 불문하
고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하겠지요.
아직도 제 자신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야,"라며 위로하고 있지만 아직
도 착잡한 마음이 해소가 되지는 않는군요.
마지막으로 그나마 제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것은 그 동남아(방글라) 친구에게 건넨
제 첫 문장이 "어디 가실려구요?" 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사람으로써 존중하는 기본 자세가 되어 있어서 스스로 조금은 대견합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