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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정난이의 제7광구 노랫말이다. 정난이는 조용한 목소리로 리듬을 타다 ‘제7 광구 검은 진주’에 이르러선 냅다 소리를 내지른다. 검은 진주를 원하는 목소리가 희망이 섞인 절규에 가깝다. 물론 그 검은 진주는 석유다. 산유국을 꿈꾸는 노래인 셈이다. 이 노래는 잠시 히트를 쳤다. 사회적 분위기를 탔기 때문이다.
▲1976년 1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폭탄선언을 한다.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온 국민이 “드디어 우리나라도 산유국이 됐다”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에 맞춰 등장한 노래가 정난이의 제7 광구다. 때문에 이 노래는 산유국 진입을 자축하는 의미로 국민의 귀를 즐겁게 했고, 가슴을 들뜨게 했다. 그러나 발견된 석유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노래도 가고, 꿈도 희망도 접어야 했다.
▲제7 광구는 1970년 박 전 대통령이 정한 구역이다.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에 위치한 대륙붕으로 그 면적은 8만㎢에 이른다. 박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그곳이 한국령임을 공식 선포했다. 이로 인해 외교 분쟁도 있었다. 일본이 자국 영토와 가까운 곳이라며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974년 한국과 일본은 각각 50%의 지분으로 공동 개발키로 합의했다. 이후 양국은 1979년부터 1988년까지 7개 공을 시추했지만 기대한 소득을 얻지 못했다. 또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탐사를 했지만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양국의 노력은 끊어질듯 하면서도 이어졌다. 10년 후인 2001년 공동탐사를 재개해 2004년까지 3~5개의 유망 구조를 확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고유가 충격에 빠져있다. 경유값 폭등으로 길가에 멈춰선 트럭과 가동을 중단한 공장,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물가, 열악한 하도급 업체의 폐업 속출 등등. 너무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정난이의 제7 광구 노랫말이 그리운 것은 이 때문이다.
노랫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새털구름 하늘높이 둥실 떠가듯 온 누리에 작은 꿈이 너를 찾는다. 제7 광구, 검은 진주.” <현창국 e-news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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