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초기
[편집] 출생과 가계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경상남도 합천 율곡면 내천리에서 완산 전씨(完山 全氏) 전상우(全相禹)[3]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점문(金點文)[4]의 10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위로 형 열환(1915년생), 형 규곤(1916년생), 누나 홍렬(1918년생), 명렬(1922년생), 누나 선학(1925년생), 형 기환(1929년생)이 있었다. 그가 태어난 뒤로도 여동생 점학(1935년생), 남동생 석환(1937년생), 경환(1942년생)이 태어났다.
그의 가계는 몰락 양반 가계로 13대조인 전제가 임진 왜란 때 영산현감으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이후 무관이 몇명 배출됐으나 한동안 벼슬에 나가지 못하고 몰락한 상태였다.
아버지 전상우는 가난한 농부였으나 마을 구장을 지낼 만큼 상당한 한문 지식이 있었다.[5] 약간의 의학 지식도 갖추고 있던 그는 정식 진료소를 차릴 수준은 아니었으나 마을 주민들을 민간요법으로 치료하기도 했다.
아버지 전상우는 성격이 괄괄해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했는데, 전두환은 이런 아버지의 성격을 닮았다. 전상우는 의리가 강해 아들 전두환이 여덟 살이던 1939년에 동네 노름꾼 지인의 빚보증을 서주느라 문중의 종토(宗土)를 저당잡혔다. 이 종토를 돌려받는 과정에서 합천 읍내 주재소 순사부장의 소환을 받았으나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5]
어머니 김점문은 자녀들 중 전두환에 대한 기대가 강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지나가는 승려를 대접해준 뒤, 그 승려로부터 '어머니의 튀어나온 앞니가 아들의 운세를 가로막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김점문은 부엌으로 달려가 쇠 집게로 생니 3개를 뽑을 정도였다.[5] 한다.
유년기
전두환이 태어날 때 그 위로 세 명의 형이 있었으나, 두 형 중 전열환은 고향 친구들과의 놀이 도중 사고로 사망했다. 둘째 형 전규곤은 추락사고로 사망했고, 전두환과 전경환 사이의 동생 전석환은 어렸을 때 병으로 사망하여 셋째형 전기환과 그, 동생 전경환과 누이들만 살아남았다.
유년기에 전두환은 근처 서당에 다니며 한학(漢學)을 수학했다. 그가 5세 되던 해에 그의 가정은 경상남도 합천 율곡면에서 대구로 이사했다. 이후 전두환은 8세 되던 해에 호란보통소학교에 입학했다.[4] 유년기의 전두환은 학업성적이 우수했지만, 4학년때 초등학교를 휴학해야 했다.
소년기와 학창시절
그의 아버지 전상우는 횡포를 부리는 일본인 순사를 벼랑에서 밀어 떨어트린 뒤 만주 지린성으로 피신하였다가 2년 만에 귀국했다.[4] 일본 순사의 수배를 피해 그의 부모는 만주 지린성 반석현에 숨어 살다가 1년 3개월 만에 귀국했다. 전상우는 만주에서 배운 한의술로 한의원을 개업했으나, 정식으로 배운 한의학이 아니라서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고,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봐라 전두환이 아버지가 전두환이를 합천에서 낳고 대구로 이사갔다가 대구에서 일본순사를 다치게해 만주로 도망쳤다는데 어떻게 된거냐?
심지어 합천에서 마을 구장까지 했을정도로 그 마을에서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된거지?
니 주장대로라면 전두환이는 태어난것도 전라도고 아버지도 전라도서 살다가 만주로 떠났어야 하는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