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집회에 동참했던 노병만 씨는 8일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희생자들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경향신문이 전하는 사연은 다음과 같다.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노 씨는 지난달 28일 "오후 1시까지 서울시청 앞으로 오라"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서울에 왔다가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 지인이 노 씨를 보자마자 '서북청년단' 다섯 글자가 새겨진 조끼를 입혀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 씨는 집회 후 남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야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동행한 고향 선배 덕분이었다.
노 씨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바로 빠져나오지 못했다"며 "세월호 참사도 잘 몰랐고 서북청년단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노 씨는 이어 "서울 광화문 청운동에서 그리고 진도 팽목항에서 지금도 많은 분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알았다. 너무 죄송했다"며 "앞으로 몇 번이라도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말했다.
1일 국민일보에 따르면, 서북청년단은 광복 직후인 1946년 11월 창단한 극우 반공단체다.
1947년 좌익과 우익이 각각 3·1절 기념식을 치른 뒤 행진하다 남대문에서 충돌한 '남대문 사건', 좌익 단체 사무실을 습격해 자신들의 간판을 내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사무실 점령 사건' 등 백색 테러를 주도했다. 특히 1만4000여 명이 희생된 제주 4·3사건 등 민간인 학살에도 적극 참여한 바 있다.
민중의 소리에 따르면, 배성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일간 베스트저장소 사이트에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며 "서북청년단원 안두희 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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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 바로 박힌 사람도 있내요.
훈훈 하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