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에서의 진리는 명확한 편입니다. 예를 들어 열역학 법칙같은 것이나...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다....뭐...이런 것들이 자연과학적 진리가 되겠지요. 그래서 가설이나 전제라고 하지 않고 공리(axiom)라고 하지요. 물론 구체의 지구나 말안장 처럼 생긴 우주에서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고 본다면 자연과학의 공리 역시도 진리가 아닐 수 있겠지요. 하물며 정치나 경제와 같은 사회과학 영역이나 역사와 같은 인문적 영역에서 진리란 그렇게 명료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생이에서 갑론을박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어찌 보면 무엇이 진리냐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하네요. 저 역시 무엇이 진리인지는 잘 모릅니다. 단지 진리가 어떠한 성격이냐는 알 듯 말 듯 해서 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진리에 대한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를 정리해 보면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하나가 대응설이과 다른 하나가 부합설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플라톤(Plato)의 이데아(Idea)설이나 종교적 진리, 칸트식 실천이성 뭐 그런 것들이지요. 오랜 기간 서구 철학을 지배하여 온 진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설 즉, 선(善)의 이데아가 태양처럼 비추어 현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진리는 이데아라고 보는 관점이 그것이지요. 기독교의 교리도 이의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지요..그리고 다른 하나가 20세기에 들어서 등장한 진리론 즉, 부합설이지요. 이는 진리라는 것이 직소(jigsaw) 퍼즐처럼 조각 조각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니라 이들 조각이 잘 맞아 떨어져 하나의 그림이 되어야 진리라는 관점입니다.
가생이에서 즐겨 언급되는 역사적 진리, 정치경제적 진리/진실에 대한 많은 주장이 일종의 이데아설 내지 대응설을 따르지 않나 보이기도 합니다. 즉, 진리는 명확히 존재하는데 여기에 벗어난 주장이라고 보이면 벌떼처럼 반박하는 것이 그 예이지요. 저 역시 그 벌떼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몇 일 전 제가 좌파성향의 인물들의 특징으로 언급했던...부정을 위한 부정을 일삼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좌파가 아닌 좌파성향의 사람이라는 논지에 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제가 진리/진실을 보지 못하거나, 궤변으로 호도한다는 식으로 비판이 들어오기도 했지요. 하지만 제 글을 잘 읽어 보면 이상을 추구하는 좌파를 얘기한게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기만 하는 좌파적 성향을 얘기한 것인데 제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진실을 보지 못한다고 호도 아닌 호도를 당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 생각해 본 것이...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사회적, 역사적, 경제적 진리라는 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사회에서 진실이나 진리를 알려고 한다면...일종의 데카르트의 방법적회의(Cogito Ergo Sum)를 거쳐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진리라는 것이 진라라고 보이는 것에 대해 지속적인 부정 즉, 방법론적 회의(dobut)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 몇 몇 그럴 듯한 서적에서 주장한거나 강연을 듣고 혹해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특히 사회 영역에서의 진리는 그렇게 명료한 것은 아니지요. 사회적 진리는 이해집단의 이해가 충돌하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특정 이해집단이 진리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집단의 이해나 관점이 절충(compromise)되어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사회과학에서의 진리는 이데아설 보다는 모자이크(mosaic)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진리라는 것이 여러 조각 그림이 잘 맞추어져 전체적으로 조화가 이룬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 특정 조각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특정 조각을 배제해 버리면 그림이 되지 않지요. 그 특정조각이 현 사회의 주도권(initiative)를 쥐고 있는 계층의 관점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좌파적 성향의 문제는 바로 이 사회의 주류의 관점을 통째로 부정한다는데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 가생이에서의 일부 주장들을 보면 특정 조각만이 진리나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조각은 부정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듯 합니다. 그렇지만 단편적인 사실로 진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좌파적 성향이나 우파적 성향의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얘기가 되겠지요.
제가 좌파적 성향의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고 난 후 졸지에 제가 우익 내지 보수꼴통이 되어 버리기도 했는데...어찌보면 다들 자기 관점으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해석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 않을까 하네요. 많은 분들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그게 왜 달이냐고 하며 싸우자고 달려드는 식^^
저 역시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지만 인간 박정희와 대통령 박정희의 공과 과를 구분하여 역사적 평가를 하여야 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잘못한 것만 비판하지 말고 균형되게 평가하자는 투의 얘기에 대해 엄청 비판적인 글들이 달리더라고요^^ 제 댓글에 반박하는 분들의 주장을 보면 박정희의 경우 공은 없고 과만 있다고 하거나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덧셈 뺄셈 처럼 계산해서 공에서 과를 뺀 결과 과만 남는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역사나 사회는 그렇게 편향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게 제 관점입니다. 역사적 진실, 그리고 이 사회가 추구하여야 할 진리나 정의는 특정 계층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여러 계층의 이해관계와 주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거지요. 그게 제가 다른 분들의 댓글에 달은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국민이 주인이라는 허울 좋은 얘기가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가 포용되는 다원주의(pluralism)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진리나 진실, 그리고 정의...이것의 핵심은 특정 조각이 사실에 대응하냐가 아니라 여러 관점, 여러 조각이 맞물려 하나의 모자이크 그림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고, 그러한 다원주의가 인정되어야 이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다원주의를 부정하고 오로지 하나의 진리만 존재한다고 보시는 분들은 좀더 유연하게 세상과 사회, 경제와 정치, 역사를 보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