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가 요즘처럼 한국 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된 때가 있었던가. 그러므로 ‘2023 기후경제 전쟁’의 두 번째 이야기는 UAE에서 시작해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UAE 방문에서 두 가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발언으로 외교 문제가 불거진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또 하나는 “원전(핵발전) 생태계를 빠르게 복원하겠다”라는 발언이었다.
두 발언은 공통점이 있다. ‘남의 나라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UAE의 적은 이란” 발언에 대해서는 이미 이란 외교부가 “이란과 UAE 관계에 대한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완전히 무지하다”라고 밝혔다.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라는 발언은 해설이 필요하다. 이 발언은 ‘아부다비 지속가능성 주간’ 기조연설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소개하며 “양국 우정의 상징인 원전 협력에 재생에너지 등 청정에너지 협력”까지 나아가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양국 우정의 상징인 원전 협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UAE에 한국 최초로 원전을 수출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두 나라가 힘을 모아 UAE 내 추가적인 원전 협력과 제3국 공동 진출 등 확대된 성과를 창출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할 테니, 앞으로 UAE도 원전으로 함께 먹고살자며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글쎄. UAE가 윤 대통령의 이런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이 나라의 에너지 이슈를 살펴봐야 알 수 있다.
ADNOC는 물론 악명 높은 탄소배출 기업이다. 그러나 최근 행보는 다르다.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등에 집중하면서 세계 최대 규모 청정에너지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청정에너지와 탄소포집 및 저장(CCS) 등에 150억 달러(약 18조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그린워싱(친환경인 척 가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에는 행보가 매우 과감하다. ADNOC 홈페이지는 언뜻 봐서는 석유회사인지 친환경 에너지 회사인지 모를 정도다.
화석연료 국가 UAE가 이렇게 파격적인 변신을 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탄소배출로 기후위기를 일으킨 과거를 반성하려고?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석유회사인 영국의 BP는 2020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적 탄소중립 정책의 추진으로 인류의 석유 수요가 정점을 찍고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석유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낮은 경제성장률로 인해 석유 소비가 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UAE의 변신은 기후위기 시대에 사활을 건 몸부림이다. 화려했던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그들도 절감한다. UAE뿐만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등 중동의 산유국들은 그동안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새로운 먹을거리에 쏟아붓고 있다
물론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에너지 전환이 당장 이루어질 리는 없다. 전 세계의 석유 소비가 하루아침에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은 석유를 지렛대로 삼고 새로운 에너지 산업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생존을 위해 과감하게 변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UAE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로 건너간 윤석열 대통령은 1월19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또 원전을 강조했다. “한국에서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뿐 아니라 전 세계의 탄소중립 목표 국가들과 원전 기술을 공유하고 다양한 수출과 협력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다보스포럼에서 유럽연합(EU)은 ‘그린딜 산업 계획(Green Deal Industrial Plan)’을 공개했다. 유럽을 녹색산업의 본거지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올해 10월부터 발효되는 ‘EU 탄소국경세’에 이은 강수다(〈시사IN〉 제801·802호 ‘기후위기의 무서운 얼굴, 탄소국경세가 온다’ 기사 참조). 한마디로 돈을 쏟아붓고, 규제를 풀고, 세금을 감면해가며 청정에너지 산업 등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끌어올리고 재생에너지는 낮추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원전을 국내 최대 전력원으로 만든 것이다. 해외 순방 때마다 무성한 뒷말을 낳는 윤 대통령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