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건국전쟁’ 오류 4가지…민중의 현명함, 이승만 덕분 아니다
기고 | 역사학자 심용환
이달 초 개봉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김덕영 감독)이 개봉 2주 만에
43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사료와 인터뷰를 통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평가를 시도하는 이 영화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정치인들의
지지와 대형교회 단체 관람 등이 이어지고 있다. ‘건국전쟁’이 말하는 사실은
무엇이고 어떤 진실을 담고 있을까. 역사학자·작가인 심용환씨가 영화
‘건국전쟁’이 주장하는 사실과 진실의 맥락을 짚었다.
1. 독재는 아니고 장기집권이라는 억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승만을 둘러싼 다양한 오해(?)에
답변을 하고 있다. 우선 영화는 4·19혁명의 원인을 이승만이 아닌 이기붕과
자유당으로 돌리고 있다. 이승만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권력을 이어가고
싶은 자유당 지도자들이 3·15부정선거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이미 1956년부터 자유당 지도자들은 이승만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고령으로 인한
급작스러운 사망을 우려했다. 3대 대선 직후 김수선, 신도성 등 자유당
비주류는 내각책임제를 이승만의 면전에서 제기했다. 다음 해인 1957년
자유당은 국회 소수파를 설득하여 내각제 개헌을 시도하였고 1958년에는
총선에서의 위기, 이기붕의 건강 악화 등으로 내각제 개헌 논의를
재개하였다. 3·15부정선거 한해 전인 1959년에는 이기붕이 직접 야당
지도자 조병옥과 함께 내각제 개헌을 도모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시도는
왜 실패했을까? 대통령 이승만의 적극적인 거부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대통령중심제를 신봉했고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었으며 4·19혁명 직전까지도 통치 행위에 적극적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료와 경찰 중심의 동원체제
때문이었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승만이 독재를 하지 않았고 단지
장기집권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부산정치파동(1952)과 사사오입개헌
(1954) 등 제헌헌법이 만들어진 지 4년 차, 6년 차에 이승만 본인의
장기집권을 위하여 헌법을 두 차례나 뜯어고쳤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이 독재가 아니면 무엇이 독재일까.
더구나 이승만은 헌법과 법률에 없는 수많은 동원체제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 18살 이상의 모든 남녀는 국민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고, 노동자는 대한노동총연맹, 농민은 대한농민총연맹, 여성은
대한부녀회 그리고 청년은 대한청년단, 학생은 학도호국단에 강제로
가입해야 했다. 회비는 강제 징수였고 회비를 내지 않으면 물자 배급을
중지하는 일까지 있었다. 오죽하면 “현 민중의 중요한 일은 첫째 기부,
둘째 공출, 셋째 고문이올시다.(1949년 10월 27일 박해극 의원 국회
발언)”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3·15부정선거는 그렇게 오랫동안 누적된
헌법과 법률에 없는 이승만 동원체제의 결과물이었다.
2. 혁명은 이승만 정권기 교과 내용과 별 관련이 없다
영화는 흥미롭게도 4·19혁명의 이유를 이승만에게 찾고 있다. 이승만이
의무 교육을 강조했고 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보급이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승만이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우선 의무 교육에 대한 강력한 요구는 미군정 당시 교육계에서
나왔다. 애국계몽운동부터 실력양성운동까지 한국의 교육가들은 민중
계몽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치고 있었고 해방 이후 미군정과 유네스코의
도움을 받아 의무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를 이승만 정권에서
이어갔다는 측면에서 일견 사실이겠으나 영화는 한국 교육 발전의 역사를
모조리 이승만 개인의 공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한 이승만 정권기 교육 내용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일민주의, 즉 이승만을 숭배하는 내용이 교육 과정에
반영되었으며 안호상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적인 교과 내용 또한 상당히
강조되었다.
4·19혁명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 혁명은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과 김주열군의 끔찍한 죽음으로 촉발되었다. 부정선거는 관료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진행된 부패 행위였고 김주열을 비롯한 수백명의 사망자와
부상자는 국민보다 대통령에게 맹종한 경찰들의 폭거가 원인이었다.
2공화국 기간 동안 국민들은 무엇을 요구했을까? 경찰과 관료는 물론이고
재벌 개혁 등 매우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두고 개혁을 요구하였다. 혁명은
이승만 정권기 동안의 누적된 문제에 대한 저항이었을 뿐 고상한 교과
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
3. 농지개혁이 이승만 업적? 김구, 안재홍, 지청천 등도 강조
영화는 곧장 ‘농지개혁’을 향해 나아갔다. 영화의 메시지는 무척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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