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신학자들이 바보라서 예정론에 다다른 것 같음?
아무리 싫어도 예정론 밖엔 답이 없어서임.
누가 아무리 어떤 궤변으로 떠들어도
기독경은 하도 근본도 없는 논리로 땜빵에 땜빵을 거듭했기 때문에
예정론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음.
솔직히 예정론도 확실한 논리는 안 되지만 그래도 그나마 그게 젤 비빌만함.
칼빈주의의 예정론이 신교쪽에선 루터교와 함께 가장 오래되고 정통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카톨릭 포함한 모든 기독교리의 수많은 해석중 그나마 성경을 통해 설득 가능한 가설이기 때문임.
물론 예정설이 잘못됐을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명확한 반박도 없이 예정설만 콕집어 잘못된거라면 그 외 모든 기독가설과 교린 말할 필요도없이 당연 잘못된거로 볼수 밖엔 없을정도로 심각한 얘기.
예정설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가설을 세운 요한웨슬리, 쯔빙글리 같은 대신학자들도 자신들 이론의 원천은 예정설임을 이해한다.
특히, 웨슬리의 신인협동설도 궁극적으론 인간 노력이나 의지가 아닌 삼위의 한 윗격인 성령이 인간마음에 찾아와 변화시키고 이후 인간 스스로의 자유(종속)의지를 부여하는거지 첨부터 인간스스로의 의지판단에 귀결시키는 이론은 아니니깐.
설령 이 이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친 인과론적 세계를 담고있다더라도 예정설의 뿌리인 결정론적 세계관을 배제할순없단 얘기.
또한 중요한건 하나의 사건을 신본주의적 관점과 인본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볼 땐 완전 다르게 나타난다는거.
마치 공관복음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거.
하나의 사건이지만 각 복음서가 다른 관점에서 얘기하듯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만 그러나 하나의 사건이란거.
예를들어, 한 인간의 구원은 신의 입장에선 알수(도) 있다. 그러므로 신에겐 인간의 구원 등은 애초 예정되고 결정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선 모르기에 구원받으려구 성경말씀과 목사설교대로 열심히 노력하는 수 밖엔없다. 그 노력이 죽을 때까지 이뤄지고 구원받는다면 이는 후천적 인간의 의지에의해 구원여부는 달려있다고 할수있다. 곧 인과율의 법칙을 따른다고보는거.
그러므로 구원은 신에겐 예정되었다고 볼수 있지만 또한 인간에겐 자유의지에 달렸다고 볼수 있는거. 그런데 어느 관점이냐의 차일뿐 같은 사건을 본다는 점에서 두 이론은 같은 얘길 다른식으로 표현하고있을뿐임.
아마두 쯔빙글리의 이론이 이 얘기와 가까울듯하다.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은 이 두 이론을 섞기도하며 둘을 동시에 인정하고있으니말이다. 이건 어찌보면 논리과학적으론 모순덩어리 이론같지만 허나 양자역학의 도플갱어나 다중우주론과 같이 해석될 여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