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엔 평화 다른 한손엔 심판의 검을 쥐고 협박하는 꼴.
입으론 화평을 외치나 속으론 학살을 준비하는 표리부동함.
누가복음 11장 즘 어딘가에 제자에게 예수가 한 말이 있음.
물론 굉장히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나 어찌보면 기독교 본연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음.
내가 화평케하려 온줄 아느냐? 아니다. 난 너희를 분쟁케하려 왔다고 하면서 둘이상 있음 서로 분쟁시키고 분열시키겠다고하죠.
즉 갈등유발인자로 역할인거죠.
그게 기독인들은 선택될 소수와 반대하는 다수의 분쟁과 갈등 속에서 끝까지 선한 쌈을 이기는 자를 건져내기위한 옥석가리기 내지는 복음서와 계시록에서 언급한 알곡이 다치지않게 한꺼번에 탈곡하여 쭉정이를 가려내기위한 메시아 임무의 기본 프로토콜임으로 추론하지만, 그럼에도 이를 두고 대부분 개독 분파들은 잘못 이해하고 예수의 임무가 분쟁유도이므로 굳이 평화를 주장해본들 결국 구원받는 자신들이 외부 반기독교 일반인들과 분쟁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웃는 겉과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단거.
하지만 예수 당신은 설령 분쟁시키러왔다더라도 기독인들은 똑같은 맘으로 분쟁을 조장해선 안되죠.
화평을 위해 목숨과같이 마음으로 부터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왜냐? 그래야 한마리 길잃은 양을 구하는게 더 소중하단 말이 이뤄질수 있고 안믿는 한 분이라도 감화시킬 여지가 있을테니까요.
여기 개독 4인방 같이 갈등과 분쟁을 조장해선 길잃은 양 한마리를 구하긴 커녕 품에 있던 99마리 조차 낙담케하고 실족시켜 큰 화근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올거기때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