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스스로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합니다
무슨 얘기냐면 자율이 아닌 타율을 지혜로 인식하고
그것을 맹신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못합니다
제가 어떤 뜻을 세우면 그것엔 항상 "의욕의 유무"가 동기이고,
의욕을 기반한 자율에 의해서만 실천을 실현하는 종자입니다
다만 이때의 실천은 타인들이 실현을 어려워하는 성과를 냅니다
이 프롤로그로 단순한 의식의 경험담을 풀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전 화를 낼때도 있고 인내를 할 때도 있습니다
계속 인내하면 좋을텐데 어쩔때 화를 내나 스스로를
곰곰히 관찰하며 생각해봤습니다
"도저히 말로해서 해결할 수 없으나 내가 지킬게 있을 때" 화를 내더군요
그렇다면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하지 못한채로 전 이런 조건이 성립시
"습.관.적"으로 화를 냈다는 결론을 갖게 되더군요
종합하면 이것은 제 자신이 가진 "습관적 악습"으로 규정하기에 적합했기에
전 제 인생에서 가능한 "습관적 악습을 걷어내자"는 의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 왠지 제가 저 스스로를 괜찮은 인간으로
여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세워졌기 때문이죠
습관적 악습이 뭐가 있나 생각해봤더니 '흡연'이 그렇더군요
그런데 흡연이 어렵다는건 원래 인식하던 바였습니다
다만 시각이 좀 확장된 상태에서 금연을 시도할 때
내가 무엇에 의해 그 시도가 와해되었는지를 생각해보니 2가지더군요
첫째는 "내 우뇌의 뜻을 나의 정체성으로 퉁쳐서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논리적 사고는 좌뇌가 하는 것이고
우뇌의 사고는 비논리의 영역에 있습니다
즉 욕구의 영역을 우뇌가 담당하는 것일 겁니다
여기서 좀 더 파고든다면 나라는 사람의 정신적 정체성은
좌뇌와 우뇌의 조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우뇌의 뜻에 따르는 비중이 큰 쪽이 내 정체성이냐
아니면
좌뇌의 뜻에 따르는 정체성이 내 정체성이냐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경험적으로 "난 끊임없는 우뇌의 요구에 좌뇌가 합리화를 시도할 것이다"
라는 예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즉 내 뜻이 아니라 우뇌의 뜻이고 난 합리화를 스스로에게 규정할 때
금연을 실패할 것이다라는 예견을 했었습니다
딱 이 2가지인데,
이것에 저항하기 위한 의식은 간단합니다
우뇌의 뜻에 반대하기 위한 명확한 귀결 2가지를 스스로 갖고,
우뇌의 요구가 있을 때 마다 반대의 귀결 2가지를 '반복환기'하면 됩디다
그 결과 전 1년 반 넘게 금연했습니다
지금은 다시 흡연을 합니다만 이건 제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고,
일반적인 경우라면 지속할 수 있을 겁니다
* 이걸 해결하는 제 나름의 의식이 따로 있습니다만 분량관계로 생략합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단식'도 가능한데,
제 경우는 24일 정도 해본 듯 합니다
단식의 소감은 석가모니나 예수님 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겠더군요.
그때 왜 그런 이야기들이 전해지는지..
이건 제 경우고 다른 분들에게도 재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게나마 혹시 성과가 있다면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글을 적는 제 의도는
삶에서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게 철학이나 종교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의식하는 종교나 철학은
이런 사례가 성립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무엇이 옳다는 것"과 동등하게
"그래서 어쩔건데?"라는 질문의 해결도
유사한 가치를 갖고있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ps. 전 철학이란 단어가 대중적 기호로 봤을 때 문제있는 호명이라고 봅니다
그냥 지혜 정도가 적당하고 친숙하니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울텐데
뭐하러 이런 권위적인 호명으로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주는지 말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논리를 중시하는 분들께
조잡한 글이라고 생각될지언정 한번쯤 올려보는게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역시 이런 글은 술김에 일필휘지로 올리는 글인 점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