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일여에는 개체성이 없습니다. 공사상에 함몰되어 개인성이나 성품이 전부 공해지고 범천에 귀속된다는 사상일 뿐입니다. 부처님 께서는 이것조차 거짓 나요, 진정한 대자유가 아니라고 설법 하셨습니다.
범아일여는 공에 떨어져 범천에 귀속되고 전생의 기억도 앎도 전부 없어진다는 논리인데 이것은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 또한 여의어야 하고 공을 벗어나기 위해선 자비심을 품어야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출가 이유가 중생들의 생노병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그 자비심이 원인이며, 이 자비심이 있었기 때문이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배운 비상비비상처의 공사상을 여의고 보리수 아래에서 구경각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참나에는 개체성이 있습니다.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 등 수많은 부처님들이 동일한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설법 방식이나 방편을 펴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 자체가 부처님 마다 개체성이 있다는 것이고 명호가 다른것도 다 같은 이유입니다.
중생과 수행자로 살아온 무량대겁의 세월동안 쌓여온 경험들 속에서 생겨난 아이덴티티가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덴티티에서 패악한 것들은 모두 공으로 돌리고 이후 공을 넘어서는 깨달음 때까지도 남은 성격들만이 각 부처님들의 개체성이 됩니다.
이것이 진실하고 항상한 성격이며 참나 입니다. 이 자성은 62가지 견해에 걸리지 않으며 범망에 걸리지 않는 성격 입니다.
깨달은 고승들을 봐도 설법 방식이나 스타일이 다릅니다. 성철스님과 법전스님이 다르고 전강선사와 송담스님이 다릅니다. 숭산스님과 탄허스님 외에 만공, 경허, 육조혜능, 대주혜해, 원효대사, 등등등 모두의 설법 방식이나 스타일이 다 제각각 입니다.
그러면서도 불법에 어긋나지 않습니다.
=====================================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를 얻을 것이니, 대왕이여, 만일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인 이는 나와 같을 것이오. 나도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나 없음을 죽이었으나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는데, 당신인들 어찌 지옥에 들어가리오."
-대반열반경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