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진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개역개정과 NIV, 두번째 사진 역시 NIV이지만 보기 편하게 잘 쓰여져 있어서 따로 첨부함.
여기서 유의할 점은 한글 개역개정에서도 52장 13절에 파란점이 찍혀있음.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30년 만에 바이블을 읽어보겠다니 잘 모르겠지만, 이런 구분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없이 많습니다.
NIV에서는 더 확실하게 소주제까지 붙여놓고, 아래가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거창하게 "종의 고난과 영광!"
이것은 앞뒤문맥이 아니라 52장 13절부터 53장 끝까지가 통째로 하나의 이야기라는 뜻.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근현대 신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내용이며, 심지어 바이블을 정경으로 추린 성서학자들도 위 내용이 하나였다는 것을 아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럼 왜 53장을 저렇게 애매하게 잘라놨느냐?
그래야 사기쳐먹기 좋그든~
실제로 초대교부들은 종교를 위해 사기질을 치는 것을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일명 '성스라운 사기' 라며 그 행위를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죠.
"우리의 구세주에 관하여, 내가 이미 생산(?) 해낸 이 증거들 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유태인 '요세푸스'를 여분의 증인으로 이용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usebius, Evamgelical Demonstration, Book III. p.124)
생각해보면 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핍박 이후 근 200년간 국가권력의 눈을 피해가며 지하로 숨어든 초대교회들이 서로 소통도 못하고 지역마다 다른 신앙을 갖게 되고, 경전들도 중구난방으로 복사, 변조되며 퍼져나갔는데, 초대교부들이 이것들을 모아다가 자기들 입장에 맞는 기록들만 추려낸 것이 현대의 바이블이거든요.
심지어 위에 언급한 유세비우스는 바이블의 현대적인 구분인 정경, 외경, 위경을 직접 나눈 사람입니다. 경전의 급을 나누고 신성성을 부여한 인물이라는 거죠.
즉, 경전도 자기네 손으로 선별하여 만드는 판에 가필이나 조작 정도야 큰 문제가 될 게 없는 겁니다.
게다가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현대의 합리주의적 사고관과 달라서 이런 조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고, 승자의 입장에서는 당연스레 정당화가 되었습니다.
기원전의 신화들은 물론이고, 아우구스투스 또한 자신의 신성을 선전하기 위해 신화(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도 하나 새로 만들어냈는데 가필이나 부분조작 정도야 애교죠~
이런 조작질보다 더 심한 가필행위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 16장에 나오는데요.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20절은 후대에 가필되었다는 것이 현대 신학의 공식 입장입니다.
niv에는 9절 앞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The earliest manuscripts and some other ancient witnesses do not have Mark 16:9~20. ]
그리고 한국성서공회의 주석에는 이렇게 나옴.
"마가의 긴 맺음말은 요한복음 20장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와, 누가복음 24장에 있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와,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지상명령을 함축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말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마가가 기록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9절은 1절과 아무 연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마가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자신의 자료로만 기록해 나갔기 때문에 사건의 연속성이 긴박하면서도 연결이 잘 이루어져 있는데 유독 마지막의 이 부분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의 저자가 마가이든 아니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성경은 때로는 한 장을 혼자 다 기록한 것도 있지만 한 권을 여러 사람이 기록하거나 편집되어진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에게 성경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성스러운 경전에 후대의 가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뜻만 통하면 되~ 중요한 거 아냐~'
(사실 사복음서의 저자들도 명명된 사람들이 쓴 게 아니라는 게 지금의 견해인데, 가필 정도는 별 것 아니겠지~ 과연 이런 책을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 베이스로 쓰여졌고, 요한복음은 이 책들이 쓰여지고 30년 정도 뒤에서야 쓰여짐. 즉 초기 기록에는 예수의 부활은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
고대의 교부들은 지금 종교에 빠져있는 사람들처럼 결과를 정해놓고 증명과정을 짜맞춘 겁니다.
한 가지 틀린 점은 교부들은 자발적으로 증명과정을 '창조'해낸 것이고, 지금의 신도들은 그 창조물들을 근거로 쓰고 있다는 것 뿐.
사족) 30년만에 바이블을 제대로 읽어볼 정도라면 신앙생활을 최소한 30년 넘게 했다는 것인데, 종철게 초반에 님이 썼던 글을 보면 그만한 신학적 지식이 전무하던데... 30년간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것 맞나요?